연합뉴스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재개’ 카드를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일본에 불화수소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종과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우대국) 배제 철회를 요구하며 5월 말까지 회신을 요구했지만 일본 측의 답변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문제뿐 아니라 코로나19 사태 이후 확산하고 있는 미·중 갈등 상황 속에서도 ‘WTO 중심 체제 강화’와 사무총장 입후보 검토 등 WTO에 의존하는 행보를 하고 있다. 이를 두고 “불가피한 전략”이라는 평가와 “실효성 없는 조치”라는 비판이 엇갈린다.

3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일본은 이날까지 한국 정부가 요구한 수출규제 철회와 관련해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12일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이유로 내건 한·일 정책대화 중단, 재래식 무기 캐치올 통제 미흡, 수출관리 조직·인력 불충분 등 3가지 이유가 모두 개선된 만큼 수출규제를 유지할 명분이 없다”며 수출규제 철회를 촉구했다. 애초 일본 수출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성 성격이 짙은 만큼 일본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적지 않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향후 여러 방안을 종합 고려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지난해 11월 중단했던 일본에 대한 WTO 제소 절차를 재개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지난해 이미 한·일 통상 당국자들이 두 차례 협의했지만 합의하지 못한 만큼 WTO 1심 격인 패널 설치 요구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또 코로나19 이후 미·중 갈등 고조 등의 정세 변화에 대해 WTO 중심의 다자 무역체제 확대, 중견국과의 협력 강화 등을 중심으로 대응한다는 기조를 세웠다. 지난 14일 사퇴한 호베르투 아제베두 WTO 사무총장 후임 인선에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나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등을 후보로 내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무리 미·중 등 강대국 앞에 WTO가 무용지물이 됐다 하더라도 WTO를 통해 유럽연합(EU)이나 중견국과 연합하는 것은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라고 평가했다. 반면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무기력한 WTO에 어떤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현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이란 이름으로 가만히 있지만 말고 다른 의미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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