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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중의 디커플링과 한국의 선택

한석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디커플링(decoupling)이란 일정 국가나 지역의 경제가 인접한 다른 국가나 보편적 세계경제 흐름에서 탈피해 독자적 모습을 보이는 현상을 의미하며 우리말로는 탈동조화(脫同調化)로 번역된다. 최근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디커플링이 점차 심화되고 있으며, 경제·기술·군사 등 다양한 분야로 갈등이 확산되면서 양국 간에 수십 년 동안 지속돼 왔던 교류와 협력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사실 지난 20년간 미국과 중국 양국은 ‘차이메리카(Chimerica)’라고 불리는 경제적 공생관계를 통해 동반성장을 이뤄 왔다. 즉 중국은 미국인이 소비하는 제품을 생산하고, 미국은 중국이 생산하는 제품을 사줌으로써 서로 협력하고 의존하는 관계를 구축해 왔다.

그러나 2018년 무역전쟁이 시작되면서 미·중의 경제관계는 차이메리카에서 디커플링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중국 제품의 미국 수입을 최대한 억제해 오고 있으며, 중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들에도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회귀)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는 상호불신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고, 첨단기술을 훔치며, 글로벌 통상질서를 어지럽히면서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인민의 피땀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며, 무역전쟁 발발의 근본적 원인은 오히려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두려움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물론 지난 1월 제1단계 무역합의로 미·중 갈등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미·중 간 디커플링은 점차 심각한 단계로 진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배경에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중국의 정책적 투명성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투명성 결여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전 세계 기업들에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줄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경제번영네트워크(EPN)라는 친미경제블록 구상을 통해 중국 고립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주요 참여국으로 호주 인도 일본 뉴질랜드 한국 베트남 등이 거론되고 있다.

게다가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은 군사적 측면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 명의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으며, 미 의회도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담은 ‘태평양 억제 구상’을 공개했다. 특히 대중국 전략보고서에는 역내 동맹들과 파트너들에게 중국 위협에 맞서기 위한 역량 개발과 안보 지원에 참가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결국 미·중 간 경제적 디커플링과 전략적 경쟁 심화는 한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로 하여금 미·중 사이에서 경제적·군사적으로 강요된 선택을 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뜨리고 있다.

이런 딜레마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우선 현재 상태에서 속시원한 정답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장기적 차원에서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제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과 중국은 우리 국익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강대국이다. 따라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두 강대국 모두와 우호적 관계를 이어나가도록 노력하는 ‘전략적 헤징’을 유지해야만 한다. 둘째, 한·미동맹 기초 위에서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에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산을 유지한 상태에서 중국과의 관계 유지에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관계 증진이다. 셋째, 미국과 중국에 대한 보다 면밀한 심층적 이해와 분석이 요구된다. 표면적 우호관계나 형식적 친밀성보다는 미·중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전략적 교류와 이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전략조직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 딜레마는 우리의 능력과 노력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

한석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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