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 저리가’ 우리 편견이 정신병보다 무섭다 [이슈&탐사]

[‘미친’ 사람들과의 인터뷰-정신질환자 장기수용 실태 추적기] <3부> 공존실험 ⑧·끝 그들의 목소리

한 정신질환자가 지난 13일 수도권의 한 정신요양시설 앞마당에서 커피를 마신 뒤 벽에 기대 쉬고 있다. 윤성호 기자

한국 사회에서 정신질환은 무서운 병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질환이 환자 당사자와 그 가족의 삶 모두를 무참히 파괴한 사례를 무수히 봐 왔기 때문입니다. 공포는 그러나 질환 자체로부터 비롯된 게 아닙니다. 당사자와 환우 가족들에게 모든 책임을 도맡긴 뒤 탈진하게 만드는 구조가 원인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가족이 포기하면 곧 환자 관리에 ‘구멍’이 생깁니다.

구멍에 빠진 환자는 정신병원 폐쇄병동, 정신요양시설에 수용되거나 교도소에 들어가 죽음만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구멍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의 두려움도 함께 키워 왔습니다. ‘공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은 공고해지고, 이는 다시 구멍을 키우는 독으로 작용합니다. 조기 발견과 치료가 늦어지면 구멍은 더 크게 벌어집니다. 지금의 한국 정신보건체계에서 그들의 결말은 정해져 있습니다.

악순환은 수십 년째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환자들을 지켜봐 왔던 전문가는 ‘격리가 아닌 유폐(幽閉)’라고 표현했습니다. 존엄한 인격체의 삶이 송두리째 부인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장기수용 환자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죽기 전 한 페이지를 남겨 놓았네요.” 정신질환 딸을 끌어안고 26년간 독박 간병을 한 김경숙씨의 인터뷰 소회입니다. 이들 모두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국민일보는 정신질환 보건 및 복지 전문가인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이용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당사자 단체와 환우가족 단체를 맡고 있는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 이진순 한국정신장애인 가족지원 활동가 회장의 해법을 공유하며 시리즈를 마칩니다.

사진=윤성호 기자

▒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배척하고 막는 건 격리 아닌 ‘사회적 유폐’
다양한 그룹이 판단 ‘사법 입원’ 도입해야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장기수용 정신질환자 실태를 ‘사회에 의한 유폐’라고 표현했다. 장기적으로 ‘사법 입원’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0년 이상 장기입원 환자 규모가 최소 1만5000명 수준으로 드러났다. 어떻게 봐야 할까.

“과거 연구 결과와 현장 의견을 종합해보면 1만5000명 중 절반 정도는 입원 조치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외래 진료만으로도 사회 속에서 살 수 있다는 의미다. 당장 필요한 건 거주공간이다. 보호자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겠지만 편리하고, 민간 병원은 병원대로 고정적인 환자들이 있다 보니 경제적으로 안정감을 얻고, 국가는 의료비만 일부 지원하면 되니 돈 안 들이고 코 푸는 셈이다.”

-그들은 어떤 상태인가.

“사회적으로 완벽히 고립된 사람들이다. 사회가 정신질환자들을 배척하고 돌아오지 못하게 막고 있다. ‘격리’보다 ‘유폐’라는 단어가 보다 정확하다. 정신병원에 버려졌다는 뜻이다. 모든 정책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들을 사회적 혐오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면서 다른 주제에서 인권을 말하는 건 사실상 거짓말에 가깝다. 사회에서 소외된 정신질환자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가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

-문제는 무엇인가.

“입원과 치료 전 과정에서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정신보건법 개정으로 정작 입원이 필요한 사람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목소리도 전국으로 나온다. 충분한 치료 인력과 환경을 갖추지 못한 병원에서 적절한 수준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치료 중심의 입원보다 수용 중심의 입원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치료 프로그램이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수용만 시켜둔 상태에 불과하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상태에서 병원 밖으로 나오면 재발할 확률이 굉장히 높을 수밖에 없다.”

-대안은.

“장기적으로는 ‘사법 입원’이다. 강제 입원은 환자 인권과 대립할 수밖에 없다. 정신과 전문의, 경찰, 법조인 등 다양한 그룹이 모여 강제 입원이 적절한지 판단하고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 ‘사적 입원’은 인권 침해 요소가 많고, 적절한 치료도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급성기·만성기 병상, 요양 병원을 구분해 맞춤형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

사진=최현규 기자

▒ 이용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무조건 병원행’ 아닌 여러 선택지 필요
밖에서 살 방법 안내하는 제도도 법제화

이용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준비 안 된 탈원화’ 부작용을 막기 위한 국가 시스템 구축을 촉구했다. 장기입원 정신질환자와 지역사회 연결을 위한 절차보조 사업 법제화 필요성을 제안했다.

-지금의 문제점은.

“지금처럼 병원에 입원만 시키는 시스템에선 환자에게 재활 기회를 제공할 유인이 떨어진다. 병원은 환자에게 재활 근로를 시킬 필요가 없고, 굳이 퇴원시켜야 할 동기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재활을 통해 사회에서 일자리를 얻고, 수급권 밖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등을 모두 줄일 수 있다.”

-주거와 일자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대도시의 경우 공공임대주택을 통해 낮은 임대료로 주거를 지원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계주거라고 부르는 고시원, 쪽방 등에서 모여 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중소 도시나 농어촌의 경우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치유농장’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농장에서 심신을 치유하고 보람도 얻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외국은 어떠한가.

“서구는 지역사회에서 사는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응급 돌봄 시스템이 촘촘히 마련돼 있다. 미국의 경우 하루 내 급성기를 가라앉히는 곳, 1주일을 지낼 수 있는 곳, 당사자 단체에서 한 달까지 돌봐주는 병상 등이 있다. 증상이 생기면 무조건 병원으로 보낼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선택지를 만들고 지역사회와 병원·시설의 장기입원자 사이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일본은 병원에 의존한 사례관리 시스템이 완전히 굳어져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었다.”

-대안은.

“예산 측면에서는 개인 예산제를 고민해볼 수 있다. 필요한 서비스 총량을 정하고, 원하는 지원 종류와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입원 비용을 활동지원·주거지원 서비스 비용으로 연결하는 형태다. 공공후견 제도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가족과 환자 사이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 퇴원 문제가 더 어렵다. 후견인은 환자 당사자 의사를 대변할 수 있고 가족 책임도 덜 수 있다. 시범사업 중인 절차보조 사업도 법제화해야 한다. 병원에 입원한 장기입원자들을 찾아가 밖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는 제도인데, 현재는 강제성이 없어 병원이 문을 안 열어주면 환자를 만날 수 없다.”

사진=윤성호 기자

▒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

현재 일자리는 수준 떨어져 생활 보장안돼
정신장애, 궁극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봐야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는 정신질환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살 수 있는 일자리 마련을 촉구했다.

-정신질환자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하나.

“인간에겐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정신질환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청소년기에 정신질환이 발병해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다 40대에 사회로 나왔다. 나를 받아주는 직장이 없었다.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다. 사회에서 일도 못하고 멸시받는데 약만 잘 먹는다고 해서 상태가 좋아질까.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 그대로 살아갈 토대를 만들어주는 게 사회의 의무다. 정신질환자의 낮은 사회적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자리가 필요하다.”

-현재 일자리 체계는 어떠한가.

“수준이 매우 떨어지고 생활도 보장되지 않는 단순 노동이다. 보건복지부 정책으로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게 된 게 2년 전부터다. 파도손은 2018년부터 복지부 정신질환자 절차보조시범사업 수행기관으로 참여해 회복된 당사자를 ‘동료지원가’로 양성하고 있다. 회복 당사자가 동료지원가 교육을 받고 정신병원·시설에 있는 환자에게 찾아가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정보를 제공한다. 퇴원 후에는 지역사회서비스를 연계해 사회에서 살아가게 돕는다. 이 사업은 시범사업으로 올해 12월까지다.”

-당사자 지원서비스는 왜 중요한가.

“지금껏 당사자가 정신건강서비스의 주체가 된 적이 없었다. 동료지원가 활동이 처음이다. 회복된 당사자들에게는 투병의 경험이 경력이 된다. 당사자였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안다. 온몸으로 아파서 경험해본 사람들이 그 경험으로 서비스를 하며 일자리도 얻는 이런 사업이 확대돼야 한다. 지금은 서울, 경기도, 부산에만 있는데 서비스 지역을 늘릴 필요가 있다. 동료지원가에 대한 자격조건도 주어졌으면 한다.”

-정신질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궁극적으로는 정신장애를 공동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정신질환은 사회심리적 장애다. ‘나는 저럴 일 없어, 내 문제가 아니야’라고 생각해온 무관심이 정신장애인들을 병원에 밀어넣는 장기수용 문제를 야기했다. 정신장애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신체질환은 관련 병원 종류나 치료방법 선택지가 많다. 정신질환자에게도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사진=권현구 기자

▒ 이진순 한국정신장애인 가족지원활동가 회장

가족도 환자 증세를 일탈행동으로 보고 넘겨
정신병 편견 심각… 국가가 조금만 관심을

이진순 한국정신장애인 가족지원활동가 회장은 발병 초기 단계부터 병을 이해하고 조기 치료와 관리가 이뤄지도록 정신질환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 교육이 왜 중요한가.

“정신질환자 대부분은 병식이 없다. 가족들도 환자 증세를 일탈 행동으로 여기고 넘긴다. 자연스레 병원에 가는 시기가 늦어진다. 진단을 받더라도 보호자는 자녀가 정신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진단 초기부터 가족이 병을 알도록 교육해야 한다. 약물 치료 중인 자녀가 증상이 올라오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보호자가 많다. 부모가 병을 알고 대응방식을 배운다면 환자 회복도 빨라질 수 있다. 국가가 정신질환자와 가족에게 의무 교육을 해야 한다.”

-현재 환우가족 지원은 어떻나.

“거의 없다. 금전적 지원은 없고 낮시간 환자를 맡길 기관도 마땅치 않다. 부모는 자식을 24시간 돌보면서 자식 몫의 돈까지 벌어야 한다. 초반에는 버티지만 나이가 들수록 탈진한다. 가족지원 체계나 상담 시스템도 없어 보호자는 갈수록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마음은 곪아간다.”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환자가 병원·시설에 입원한 뒤부터 사회 적응훈련을 받도록 해야 한다. 가족이 옆에 없더라도 혼자서 생활이 가능해져야 궁극적으로 가족 부담을 덜 수 있다. 병원·시설 내 프로그램은 수년째 변화하지 않고 있다. 환자별 맞춤형 교육으로 퇴원 이후 삶을 위한 훈련을 시켜야 한다. 사회 적응을 돕는 재활시설도 확충돼야 한다.”

-개선 사항은.

“정신병에 대한 편견이 심각하다. 정신병 환자 범죄는 대부분 약을 먹지 않아서 일어났다. 그러면 이들이 약을 먹고 살도록 국가가 도와야 하는데 책임은 매번 환자 개인과 가족에게 돌아간다. 어떤 사고가 벌어지면 국가가 나서서 가족을 위로해주기도 하지만 정신질환만큼은 늘 예외였다. 국가가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달라질 수 있다.”

-가족지원활동가는 무엇인가.

“조현병 환자였던 남편을 27년간 돌보고 떠나보낸 게 7년이 되어간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교육을 받았고, 그제야 남편 행동을 이해하게 됐다. 다른 가족과 얘기를 나누며 회복도 됐다. 정신장애인 가족지원활동가 교육을 받은 회복 가족은 비슷한 처지의 가족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상담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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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빈 김판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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