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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흑인 폭동

김의구 논설위원


25세의 아프리카계 흑인 로드니 킹은 1991년 3월 3일 LA 풋힐 고속도로를 승용차로 질주했다. 친구 2명과 술을 마시며 농구 경기를 보느라 밤을 새운 뒤였다. 그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백인 경찰관 4명의 무자비한 구타가 자행됐다. 킹은 얼굴뼈와 발목뼈 골절상을 입었고 청력이 손상됐다. 이듬해 4월 29일 경찰들이 무죄 평결을 받았다. 배심원단 가운데 10명이 백인이었고, 히스패닉과 아시아계가 1명씩이었다. 판결을 지켜보던 흑인들은 곧바로 거리로 뛰쳐 나왔다. 5월 4일까지 계속된 LA 폭동으로 63명이 숨졌고, 2300여명이 부상했다. 해당 경찰관들은 연방민권법 위반 혐의로 다시 기소돼 2명이 유죄, 2명은 무죄 평결을 받았다. 킹은 알코올 과용 등으로 굴곡진 삶을 살다 2012년 사망했다.

로드니 킹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지난달 25일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났다. 위조지폐 신고를 받고 출동한 백인 경찰이 부근에 있던 흑인 조지 플로이드(46)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하는데도 8분 넘게 무릎으로 목을 눌러 숨지게 했다. 당시 동영상이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흑인 시위가 촉발됐다. 상점이 약탈당하고 방화가 발생해 주 방위군이 투입됐고, 주요 도시에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매우 슬프고 비극적인 죽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위가 격화되자 강경 진압을 시사했다. 백악관 담을 넘으려던 시위대를 향해 ‘가장 사나운 개’를 만났을 것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시위대를 급진 좌파로 몰기도 했다.

이번 소요는 LA 때보다 양상이 심각해 보인다. 폭행치상이 아니라 치사 사건이며, LA 중심이 아니라 미 전역과 해외에서도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사망자가 10만명을 넘어선 미국의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불만도 사태 격화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비상식적으로 정파적이고 마찰을 마다치 않는 트럼프식 정치가 배경으로 꼽히기도 한다. 소요의 향배가 걱정스럽지만 다인종 사회인 미국의 진로도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김의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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