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이 나죠.”

15년 전쯤 일이다. 수도권 한 기독교 계통 보육시설을 취재한 일이 있었다. 그때 생활지도사 선생님 가운데 20대 중반을 넘긴 여성이 있었다. 대학 시절 교회 청년부에서 보육시설에 봉사 왔다가 사명을 받아 생활지도사가 된 분이었다. 그는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교 1학년 남자반 8명과 생활을 같이했다. ‘이쁜샘’으로 불리던 젊은 어머니였다.

아이들 대개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 선생님이 길렀다. 그들이 성장해 중학교 1학년이 된 것이다. 취재를 위해 그 ‘중 1병’ 걸린 녀석들 생활 공간에서 반나절을 보냈다. ‘멘털 붕괴’라는 말이 딱 맞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 집어던진 녀석들의 부산스러움에 105㎡(32평) 집은 뒤돌아서면 수리할 곳이 생겼다. 그런데도 젊은 엄마는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그 자세에 놀라 “대단하시네요”라고 말하자 그는 40대 어머니 말투로 “천불이 난다”면서도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천불나다’는 ‘속끓인다’는 뜻으로 쓰인다. ‘천 곳에서 일어난 불길’이 어원일 듯하다. 한데 그에게 정작 천불나는 일은 따로 있었다. 여고 1년생 혜진(가명)의 교통사고사 때문이었다. 미취학 아동으로 들어온 혜진 자매는 연년생이었다. 연고를 수소문했으나 그 부모가 피하는 바람에 사실상 무연고 상태였다. 이쁜샘은 자매의 초등학교 때 어머니였다.

그 무렵 혜진은 학교를 마치고 지방도를 이어폰 끼고 걷다가 사고를 당했다. 말이 없는 아이였고 음악과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여동생은 ‘유일한 혈육’을 잃었다. “언니, 나 혼자 두고 가지 마”라며 동생이 절규했다.

한데 교통사고 수습 과정에서 무연고 혜진 자매를 단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는 이혼한 친부모가 각기 득달같이 왔다. 경찰과 보험사가 보호자 조회를 통해 통보하자 언제 아이들을 버렸냐는 듯 나타나 보험금 협상을 벌였다. 구원의 부모는 그 과정에서 서로 보험금을 더 갖겠다고 싸웠다. 생활지도사와 시설 운영자가 끼어들 수 있는 법적 장치는 없었다.

부모는 큰딸 사고사로 보험금과 합의금 등을 통틀어 각기 4000여만원씩을 나눠 가졌다. 그 과정에서 여동생과 선생님, 그리고 시설 측 모두가 상처를 깊게 받았다. ‘천불’이 나는 일이었다. 이쁜샘은 가슴속 천불을 끄고 홀로된 여동생을 돌봤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그 선생님은 지금 40대가 됐고 여전히 사회복지계에서 헌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삶을 살게 할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이들과 함께하는 길을 가고 싶다”고 했었다. 보육시설 측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보육시설이라면 부모의 의무를 저버리고도 친권을 이유로 돈만 챙기는 사례를 한두 번쯤 경험하게 마련이다. ‘구하라법’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아이들의 상처는 계속될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가수 구하라씨 사망 뒤 20여년 전 집을 떠난 친모가 나타나 유산의 절반을 요구해 촉발된 이른바 ‘구하라법’ 처리는 20대 국회에서 불발됐다. 그런데 최근 119구조대원이었던 딸이 사망하자 그 어머니가 32년 만에 나타나 유족급여를 받아간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다. 구하라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사법제도의 맹점 때문에 국민이 고통받는데도 국회가 정치적 거래에 함몰돼 민생법안조차도 패키지로 활용한 탓이다.

혜진이의 동생은 어찌 됐을까. 그 후 이쁜샘과 시설 선생님, 그리고 원장 등이 정서적 안정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 등을 통해 사랑으로 돌봤다. 그리고 마침내 부모 중 한쪽이 깊이 반성하고 집으로 데려갔다.

“간절히 기도했어요. 정말 잘 자라게 해달라고요. 혜진이 동생은 이제 당당한 사회인이 되어 보육원 동생들을 보러 선물을 한 아름씩 안고 오곤 합니다. 법이 지켜주지 못한다고 우리조차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아요.”

전정희 뉴콘텐츠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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