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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우 칼럼] ‘전직 대통령 사면=통합’이라는 해괴한 논리


대통령의 재임 중 범죄 피해 범위 일반 범죄보다 커
보다 엄격하게 죄를 묻는 게 법 철학과 법 정신에 부합

국민통합 명분으로 특별사면권 남발하는 건
미래 대통령 범죄에 미리 면죄부 주는 격

김영삼의 뚝심이 없었으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서초동 법정에 선 모습을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김영삼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 논리를 ‘역사 바로 세우기’로 한 방에 날려버렸다. 이때부터 비로소 대한민국이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하마터면 두 전직 대통령을 서초동 법정이 아닌 역사의 법정에서 대면할 뻔했다.

검찰은 반란·내란·수뢰 혐의로 기소한 전두환에게 사형, 노태우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그 검찰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구형량은 셌다. 1, 2심은 전두환에게 검찰 구형대로 사형을, 노태우에겐 징역 22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 형량은 대법원을 거치면서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으로 줄어든다. 형량이 적절했느냐는 당시의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대법원 선고대로라면 전두환은 아직 감방에 있어야 하고, 노태우는 2013년 석방되는 게 순리다. 그게 법치다.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기간은 고작 2년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김영삼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이들을 특별사면한 이유를 지금도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대통합 차원이라고 했지만 반란 및 내란 수괴의 형량이 겨우 2년이라니, 거창했던 역사 바로 세우기치고는 너무도 허망한 결론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국민화합에 기여했다면 그나마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두환은 여전히 “광주와 내가 무슨 상관이냐”며 온 국민이 다 아는 광주의 원죄를 본인만 모른다고 발뺌하는 중이다.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면서 고급 주택에 살고 골프도 자주 즐긴다. 죽는 날까지 자성의 삶을 살아도 죗값을 치르기에 턱없이 부족한 그가 하는 일이라곤 국민 부아만 돋우는 일이다. 그래도 자신을 대신해 아들을 광주에 보낸 노태우는 개전의 정이라도 보인다.

이 와중에 뜬금없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끝나지도 않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중진 여야 정치인이 정계를 떠나면서 현실정치를 하는 이에게 건넨 의례적인 당부라고 해도 너무 무책임하다. 이를 받아 사면을 들먹이는 현실정치인도 등장했다. 전두환의 뻔뻔함을 목도하면서도 전직 대통령 사면을 국민통합과 동의어로 치환하는 레토릭의 근거가 뭔지 모르겠다.

이명박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는 뇌물수수, 배임, 횡령, 직권남용 등 20개가 넘는다. 박근혜는 21개다. 이명박은 2심에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8000여만원을 선고받았다. 박근혜의 경우(2심) 직권남용·강요 등 18개 혐의에 대해 징역 25년과 벌금 200억원, 국고손실 등 2개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5년과 추징금 27억원이 선고됐고, 공천개입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2년이 확정됐다.

대통령의 범죄는 그 피해가 전 국민에 미친다는 점에서 일반 범죄보다 중하다. 따라서 대통령의 재임 중 범죄는 피해 범위와 규모가 제한적인 일반 범죄에 비해 그 죄를 엄격하게 묻는 게 법 철학과 법 정신에 부합한다. 일반 범죄자라면 무기징역 확정 2년 만에 특별사면을 받아 석방되는 일은 꿈속에서나 가능하다. 꿈속에서나 가능한 그 어려운 일을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은 척척 잘도 해낸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은 무죄를 주장한다. 정당성을 포장하기 위해 정치보복 프레임을 동원하기도 한다. 진정한 사과나 통렬한 자기반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사면된다 해도 이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겠다. 한 시대의 어두운 부분을 매듭짓고 청산하는 과정에는 많은 논란과 후유증이 따른다. 프랑스도 2차대전 후 나치 부역자 처벌 문제로 강온파의 갈등이 심했다. 당시 강경론을 편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제의 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그만큼의 벌을 받는 게 정의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돼서는 안 된다. 국민이 동의한 적 없는 어쭙잖은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중죄를 범한 전직 대통령에 대해 특혜를 남발하는 것은 내일의 대통령에게 죄를 지어도 된다는 면죄부를 미리 주는 것과 같다. 최소한 형기의 반이라도 마치고 난 다음에 사면 문제를 논의하는 게 보편적 법 감정에 맞는다. 통렬한 반성과 진솔한 사과가 전제돼야 하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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