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의 유서 깊은 세인트 존스 교회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서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위 사진)과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표결에 참여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미·중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 사망 시위로 국내에서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시 주석은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문제로 미국은 물론 서방세계의 격렬한 반발을 사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때리기’와 관련해 딜레마에 빠졌다. 말로는 때릴 수 있지만 실제 압박 수단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얽혀 있어 중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할 경우 그 피해가 부메랑이 돼서 돌아와 미국 경제도 악화시킬 수 있다. 미국 경제가 악화되면 트럼프의 재선도 물 건너간다.

‘중국 압박’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대선 전략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중국 책임론’은 만병통치약과 같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부실 대처’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여파로 촉발된 미국 경제위기도 중국 탓으로 돌릴 기세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에 빌미를 계속 제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강행 통과시킨 것이 대표적 예다. 중국이 코로나19가 발생한 나라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중(反中) 여론 높지만 ‘부메랑’ 우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 배경에는 미국 내에서 높아지는 ‘반중 정서’가 있다. 비영리 조사 단체 퓨리서치센터는 미국 성인 1만957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6%가 중국에 대해 비호감(unfavorable)을 드러냈다고 지난달 26일 밝혔다. 퓨리서치가 2005년부터 중국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이후 가장 부정적인 결과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와 여론조사 기관 모닝컨설트가 지난달 20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31%가 ‘중국은 미국의 적’이라고 답했다. 이 수치도 넉 달 전인 지난 1월 같은 조사보다 11% 포인트나 증가한 것이다. 퓨리서치와 모닝컨설트의 여론조사 결과는 최근 들어 미국 내에서 반중 여론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러나 반중 여론만 믿고 중국에 채찍을 들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경제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의 고민이 시작된다.

대표적인 것이 관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추가 보복 관세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부품에 크게 의존하는 미국 일부 제조업은 추가 보복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중국 부품 가격이 올라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CNN은 “중국에 대한 추가 보복 관세가 이뤄질 경우 제조업이 많은 오하이오주와 펜실베이니아주 등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특히 오하이오주와 펜실베이니아주는 올해 미국 대선의 최대 격전지라 트럼프 대통령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중국 때리기, 약속 파기 ‘명분’ 제공

농산물도 문제다. 지난 1월 15일 합의된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서 중국은 농산물과 공산품·서비스·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앞으로 2년 동안 2017년에 비해 2000억 달러(약 245조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을 추가로 구매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한 지 거의 5개월이 다 돼 가고 있지만 중국은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CNN방송은 “중국은 현재까지 농산물·에너지·공산품과 관련해 구매를 약속한 분량의 절반 미만을 구입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보도했다.

중국 입장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로 미국과의 합의를 제대로 지키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고강도 압박은 중국에 약속을 깰 명분을 제공한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미국 농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CNN은 “미국 농가에서는 중국에 수출하기로 예정됐던 농산물들이 기약 없이 쌓여만 가고 있다”면서 “미·중 무역 분쟁이 불붙었던 2019년 파산한 미국 농가는 2018년에 비해 20%나 늘었다”고 전했다.

트럼프 속도조절… 충돌 배제 못해

중국의 반격도 거세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일 “중국 정부가 주요 국영 회사에 대두 등 미국산 농산물 구매 중단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중 무역 분쟁을 가까스로 수습했던 지난 1월 미·중 1단계 무역합의 파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가 ‘말폭탄’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29일 중국의 홍콩보안법 강행 처리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이 홍콩에 부여한 (무역·관세·비자 등)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절차를 시작한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이 홍콩에 대해 특별지위를 박탈할 경우 홍콩에 진출해 있는 미국 금융회사들도 피해가 불가피하다. 게다가 중국이 ‘달러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움직일 위험도 크다. 블룸버그통신은 “어떤 조치도 당장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미국 주식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절차 개시 발표에 조용했다”고 분석했다.

지금 미·중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위기 국면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말과 달리 행동에선 자제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미·중 가운데 어느 한 나라가 실제로 행동에 나선다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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