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히말라야의 나라 부탄에 두 차례 다녀온 적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지는 바람에 부탄은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나라가 됐다. 대자연의 맑은 공기 속에 살생하지 않고 욕심 없이 사는 불교국가 사람들의 순수함에 찬탄하면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치켜세우는 것도 오해요,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밖에 되지 않는 빈곤한 나라에서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당한 채 살아가는데 무슨 행복이냐고 비웃는 것도 오해다. 부탄 국민 97%가 행복하다는 말은 정부가 계량한 조사 결과일 뿐이라고 깎아내리는 자들도 있다.

내가 알기에 전 세계가 동일한 기준으로 행복지수라는 걸 조사한 바가 없으므로 부탄이 ‘행복지수 1위’라는 수식어는 거짓이다. GNP(국민총생산)나 GDP(국내총생산)에는 1, 2위가 있지만 부탄 식의 GNH(국민총행복)에는 국가 간 서열이 있을 리 없다. 부탄은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정책 수립에 처음 도입하고 GNH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2년에 한 번씩 국민총행복조사를 하고 있을 뿐이다. 돈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봐야지, 순위나 수치로 그들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찬양이나 비난 그 어느 쪽이든.

부탄에 간 나는 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정말 행복을 자주 느끼는지, 행복한 이들은 어떤 바람을 갖고 사는지, 행복하지 않는 이들은 또 어떤 기원을 하는지 궁금하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나라에는 가는 곳마다 사원이 있고 펄럭이는 오색 깃발이 있어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봤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가 티벳불교를 믿는 부탄에서는 라마경전을 새긴 오색 깃발 룽다와 타르초가 히말라야의 별보다 많다. 깃발에 경전을 써놓은 것은 바람이 경전을 읽어 그 가르침을 세상 곳곳으로 전해주길 바라서이다. 오래전에 룽다와 타르초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우리말 ‘바라다’와 ‘바람’이 같은 어원을 가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바라다’는 말은 어떤 일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 꼭 그렇게 됐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라는 건 어떤 것을 향해 보는 것이다. ‘바라보다’는 말도 ‘바라다’에서 나왔다. 우리말 바람이 ‘불다’에서 기원한 것이어서 불암에서 부람으로, 다시 바람으로 변했으리라는 국어학적 추정은 별로 믿고 싶지 않다. 불어서 바람이 아니라 바라서 바람이라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부탄 사람들이 우리말을 배운다면 바라다와 바람의 어원이 같을 거라는 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해줄 것이다. 그들의 땅에 있는 동안 나도 바람에 펄럭이는 룽다와 타르초를 바라보며 기도했다. ‘당신들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바라’라고.

지금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면, ‘당신들의 바람이 이뤄지길 바라’가 아니라 ‘바래’라고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동사가 ‘바라다’여서 어간에 ‘-아’가 붙을 때에는 ‘바라’가 맞다는 것은 알지만, 자장면이 아니라 짜장면이 더 맛있는 것처럼 ‘바라’보다는 ‘바래’가 더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 보이는 것을 어쩌겠는가.

카피라이터·사진작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