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엽씨(오른쪽)가 지난달 18일 인천 집에서 시청각장애인 둘째딸 김예지씨와 마주 앉아 머리를 넘겨주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올해 스물다섯 살인 김예지씨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무언가를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얼굴은 물론 엄마, 아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시각장애인과 비슷한데 그는 듣지도 못한다. 언제부터 못 들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세 살 무렵 천둥이 친 어느 날 예지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하게 여긴 부모가 귀 옆에 냄비 뚜껑 두 개로 ‘쾅’ 소리를 냈을 때도 반응이 없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했더니 레오파드(LEOPARD) 증후군 진단이 나왔다. 피부의 이상과 청각장애 등을 동반하는 보기 드문 유전 질환이다.

예지씨는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상태로 25년을 살았다. 그가 ‘살았다’는 말보다 부모가 그를 ‘살게 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예지씨는 아직 자신의 욕구와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 손짓과 몸짓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화가 나면 자신을 때리는 예지씨

지난달 11일 취재팀이 인천의 예지씨 집을 찾았을 때 그는 짙은 회색 티셔츠에 긴 트레이닝바지를 입고 거실 한가운데 누워 있었다. 예지씨는 누운 채 거실에 앉아 있는 아버지 김자엽(67)씨와 어머니 김미영(53)씨를 오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으려 했다. 그러다 뭔가가 불만스러운 듯 부모를 꼬집고 때렸다. 아버지가 이를 말리자 자신의 얼굴을 세게 때렸다. 다시 이를 못 하게 하자 발로 바닥을 쾅쾅 굴렀다.

미영씨는 자해 행위가 예지씨가 불만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말했다. “얘는 화가 나면 머리를 땅바닥에 그냥 들이받아요.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밤에도 그래. 말리면 오히려 강화되니까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데 집에선 그게 안 돼요. 이 건물 사는 사람들이 다 일어나야 하니까요.”

경찰이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도 있다. “한창 아동학대 문제가 심할 때였어요. 근데 (예지가) 한밤중에 난리를 피우니까 누가 신고를 했나봐. 애가 맞아서 그런 줄 알고.”(자엽씨) 집 거실에 어린아이 키우는 집에 있을 법한 두꺼운 층간소음 방지 매트가 깔린 것도 그때부터다.

예지씨는 취재팀이 부모와 인터뷰하는 도중 계속 불만을 표출했다. 부부는 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번갈아가며 여러 시도를 했다. 화장실을 데려갔고, 예지씨가 요즘 갖고 논다는 큰 냄비를 갖다 줬다. 밖에 나가고 싶어서일까 해서 외투를 입히고 머리에 빗질을 해줬다. 빵을 데워줘도, 사과를 깎아줘도 예지씨는 모두 거부했다. 마지막으로 라면을 끓여줬더니 그제야 양팔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긍정의 표시를 했다. 1시간 반 동안 수수께끼를 풀던 부모도 마침내 한숨을 돌렸다.

“배는 고프고 라면은 먹고 싶고, 그걸 표현해주면 나도 힘들지 않고 자기도 배고프지 않을 텐데, 이런 게 힘든 거야. 똑같아. 시행착오가 만날 똑같아요.”(미영씨)

시청각장애인 김예지씨의 어릴 적 모습. 김미영씨 가족 제공

정부 “알아서 해라”에 늦어진 교육

예지씨는 1995년 5월에 태어났다. 왼쪽 눈에 조그마한 초승달처럼 생긴 까만 흔적이 있었고 오른쪽 눈은 뿌연 유리창처럼 혼탁했다. ‘각막을 이식받으면 볼 수 있다’고 해서 부모는 서울의 대형병원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각막을 신청했다. 세 살 때부터 5차례 수술을 받았다.

“계속 전신마취를 하는 거죠. 나중에는 마취과장이 ‘이제 안 된다. 1년에 몇 번씩 마취하면 큰일 난다’고 말리기도 했어요. ‘병원은 책임 없다’는 각서를 쓰고 수술을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한쪽 눈만이라도 됐으면 저렇게 생활하진 않겠죠.”(자엽씨)

수술이 더 이상 소용없게 됐을 때 예지씨는 6살이었다. “애를 어디 보내야 할지 완전 깜깜했어요. 선생님도 몰라, 교육기관도 몰라, 아무도 몰라. 유치원, 어린이집 보내려고 해도 ‘우리는 못해요’ ‘받아줄 수 없어요’ 하니까 어떻게 해요. 갈 데가 없는데.”(미영씨)

8살이 되자 초등학교에 보내라는 통지서가 왔다. 부모는 딸을 맡길 수 있는 기관을 찾아보려 했다. “애 아빠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에 계속 전화를 했는데 ‘부모가 직접 알아보라’고 하더라고요. 교육부, 복지부 쪽에서는 좀 잘 알까 했는데 우리만큼 모르더라고요.”(미영씨) 부모는 취학을 3차례 미룰 수밖에 없었다.

수소문 끝에 인천의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혜광학교에 입학했다. 예지씨가 11살이 됐을 때였다.
학교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학교는 예지씨와 같은 데프블라인드 학생을 가르친 경험이 없었다. 예지씨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커버렸다. 다만 학교에 다니면서 겨우 기저귀를 떼게 됐다.

미영씨는 일기를 쓰고 있다. 미지의 세계인 딸을 이해하기 위한 관찰기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에서 여름방학 숙제로 일기 쓰기를 내준 일이 계기가 됐다. 미영씨는 ‘예지는 할 수 없는데’라고 생각했다가 ‘아니지. 예지의 하루하루를 적어보자’며 숙제를 대신 하기 시작했다. 올해 1월 26일 일기는 ‘예지의 기분이 매우 좋다’로 시작된다.

“(예지가) 내 무릎에 앉아 가슴에 안겨 웃고 논다. 두 손으로 내 목을 감싸고 얼굴을 더듬기도 했다. 예지가 내 목을 만질 때, 예지 이름을 불러봤더니 웃는다. 예지가 내 입술을 만지면 나도 예지 입술을 만지고, 목을 만지면 나도 목을 만져줬다. ‘나는 엄마, 너는 예지’라고도 말해줬다.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김미영씨의 지난 1월 26일 일기. 김미영씨 제공
김미영씨의 2019년 1월 2일 일기. 김미영씨 제공

미영씨와 자엽씨는 딸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영화 ‘달에 부는 바람’으로 남겼다. 사생활을 내보여야 하는 부담감에 한참을 망설였다고 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에 TV에도 나가고 영화도 찍어놓은 거예요. 이런 아이가 또 다른 사례에 연구도 되고, 시행착오를 좀 덜 겪었으면 해서였어요.”(미영씨)

너무 늦게 만난 설리번 선생님

‘누군가의 도움’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찾아왔다. 예지씨는 2018년 9월 ‘몸짓 언어’를 연구하는 주혜선 박사를 만났다. 대구대 특수교육과 박사과정에 있던 주 박사는 중도·중복장애 학생을 위한 몸짓 언어인 ‘손담’과 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204개 단어를 연구·개발하는 데 참여했다. 주 박사는 이를 예지씨에게 적용하고 싶었다.

낯선 손길을 싫어한다는 예지씨는 처음 만난 주 박사를 유독 반겼다고 한다. 주 박사는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제가 처음 만나보는 시청각장애인이라 두려움을 안고 갔는데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처럼 너무나 좋아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후 지난한 손담 교육이 시작됐다. 미영씨는 주 박사가 기 싸움에서 예지를 제압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예지가 꼬집어도 가만히 있고, 절대 화도 안 내시고, 예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냥 보세요. 솔직히 엄마는 그거 안 되거든요.”

주 박사는 예지씨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식판을 가져온 뒤 숟가락을 잡아만 주고 자기가 한 손으로 가져가게 하는 과정’을 6개월 동안 익히게 했다. “선생님이 오시면 2~3시간씩 있거든요. 거의 씨름만 하다가 끝나기도 해요. 예지가 말 듣는 게 한두 번인데, 그걸 6개월을 하니까 식판을 들 줄 알더라고요.”(미영씨)

미영씨는 딸이 주 박사를 늦게 만난 게 무척 아쉽다. “제가 계속 기대한 게 설리번 같은 선생님이 있었으면 하는 거였어요. 근데 만났잖아요. 문제는 얘가 받아들이지 않아요. 나이가 너무 많아요. 자기 고착화가 다 된 상태라서 이 나이에 뭘 배우고 받아들인다는 게 안 돼요. 어릴 때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주 박사는 예지씨와의 손담 교육 내용을 바탕으로 박사 논문을 썼다. 그는 “꼭 손담을 익힐 것이라는 기대보다 일관성 있게 적용하다 보면 나중에 자연스럽게 습득해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어요. 저와 예지의 만남은 평생 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김예지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야 해요”라고 강조했다.

김미영씨(왼쪽)가 지난달 18일 인천 집에서 시청각장애인인 딸 김예지씨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주며 바라보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세 가지 욕구 표현만 했으면”

미영씨와 자엽씨는 딸을 돌보는 일이 점점 힘에 부친다. 특히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예지씨의 생활이 그들을 지치게 하고 있다. 예지씨는 졸리면 자고 안 졸리면 깨어 있다. 부부는 그가 깨어 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선잠을 잔다. 취재팀이 방문하기 전날 밤에는 예지씨가 부엌에서 칼을 꺼내 갖고 놀아 기겁했다고 한다.

부부는 정체된 삶을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쯤이면 자녀들 결혼 생각할 나이인데 예지는 행동이 유치원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아이가 정신적으로 크지 않으니까 거기에 우리 생각이 멈춰 있어요.”(미영씨)

부부는 딸이 헬렌 켈러처럼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예지씨가 3가지 표현만 익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프다’ ‘먹고 싶다’ ‘화장실 가고 싶다’ 3가지만 하면 돼요”라며 “욕심 같아선 손담으로 자기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면 진짜 좋죠. 근데 다른 거는 욕심이고 그 3가지만 하면 좋겠어요. 그래야 어디 기관(시설)이라도 갈 수 있으니까요.”(미영씨)

자엽씨는 다른 소원을 이야기했다. “제가 (하늘나라) 갈 적에 (예지도) 같이 갔으면 하는 게 제 소원이에요. 나 갈 때쯤 (예지도) 가야 집사람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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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2팀 권기석·김유나·권중혁·방극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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