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네티즌 유희문화와 ‘깡 신드롬’의 허탈함

[한동윤의 뮤직플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비의 ‘깡’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2017년 12월에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뒤늦게 화제가 되면서 유튜브에서 현재 1300만뷰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2007년 영국 가수 릭 애슬리가 큰 인기를 얻었다. 그가 1987년에 발표한 ‘네버 고너 기브 유 업’ 뮤직비디오가 온라인 공간 도처에 퍼졌다.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애슬리는 2008년 MTV 유럽 뮤직 어워드에서 ‘역대 최고의 가수’ 부문을 수상했다. 얼마 뒤에는 컵, 가방, 옷 등 그의 얼굴을 새긴 각종 상품도 제작됐다. 2016년 미국 대선 때에는 애슬리를 대통령으로 뽑자는 장난스러운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짧게 전성기를 마감한 왕년의 가수가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애슬리가 대중의 부름을 받은 것은 온라인에서 특정 문화 콘텐츠를 공유하며 소비하는 활동인 ‘인터넷 밈(meme)’ 덕분이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네버 고너 기브 유 업’ 뮤직비디오를 특정 주제와 관련된 링크라고 거짓으로 소개하는 낚시질이 유행하면서 애슬리에게 관심이 쏟아졌다. “절대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 당신을 울리지 않을 거예요” 같은 가사는 국민에게 하는 공약 같아서 애슬리는 대선의 가상 후보로도 떠오르게 됐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가수 비가 밈으로 기사회생의 은혜를 입었다. 비는 2010년대 들어 부진을 거듭했다. ‘널 붙잡을 노래’ 이후 새로 선보인 노래들은 하나같이 볼품없었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2019)은 평단의 혹평을 들었으며, 흥행에도 참패했다. 한때 ‘월드 스타’라는 호칭까지 들었던 비는 빠르게 내리막길을 달렸다. 그러던 중 2017년에 발표했던 ‘깡’이 뒤늦게 빵 터졌다.

2010년 이후에 낸 대부분 노래와 마찬가지로 ‘깡’ 역시 작품성이 좋지 않았다. 가사가 유치할 뿐만 아니라 일관성마저 없었다. 전반적으로 철지난 스타일을 우려먹어서 촌스러웠으며, 래핑 파트랑 싱잉 파트의 정서와 결이 확연히 달라 매우 어색했다. 네티즌들은 유튜브에 비를 놀리는 글을 남겼다. 이 행위가 놀이로 번지면서 ‘깡’이 회자됐고, 하루에 ‘깡’ 뮤직비디오를 몇 번씩 본다는 ‘1일 N깡’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비를 통해 인기가 권능임을 재차 실감한다. 비가 하루아침에 대세가 되자 네티즌과 매체들은 입을 모아 비를 칭찬하고 있다. 그가 연기한 엄복동이 자전거를 훔친 것처럼 현실에서 남의 노래를 훔친 일은 성공이라는 연막에 완벽하게 가려졌다. 비와 배진렬이 작곡했다는 2011년 싱글 ‘부산여자’는 미국 가수 라파엘 사딕이 2004년 출시한 ‘디트로이트 걸’을 상당 부분 베낀 것이었다.

작금의 성황은 몇몇 음악가들에게 허탈감을 안길지 모른다. ‘깡’은 다시 듣기가 두려울 만큼 괴상하고 조잡하다. 작품성으로 제목을 정하면 ‘꽝’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이런 졸작이 네티즌의 유희 문화를 타고 한순간에 영전했다. 터무니없고 끔찍한 일이다. 근사한 노래를 내도 주목받지 못하는 뮤지션들은 서러울 만하다. ‘깡 신드롬’은 마냥 유쾌한 현상이 아니다.


한동윤 음악평론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