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할 때의 일이다. 그 수업에서는 학기말 과제로 각자 소논문을 작성했다. 한국 영화에 나타난 모성을 주제로 소논문을 쓰겠다고 한 학생이 있었다. 개인별 면담 시간에 그동안 써온 논문을 가져왔는데 읽어보았더니 몇몇 문장의 경우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쓸 만한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에게 이 문장을 직접 쓴 거냐고 물어보았다. 직접 쓴 게 아니라면 인용한 출처를 밝히고 각주를 달아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학생은 자신이 직접 썼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도 나는 믿지 않았나보다. 반신반의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학생은 자신이 직접 썼다면서 몹시 속상해했다.

그때서야 직접 쓴 게 아니라고 섣부르게 판단을 했던 나의 태도가 그 학생에게 상처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최선을 다해 학기가 끝날 때까지 논문을 지도해주었고 학생은 완성도 높은 소논문을 제출했다. 그 논문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속단을 했던 것에 대한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쉽게 판단을 내리려고 한다. 빠른 판단을 내리다 보면 타인의 내면과 진심을 살펴볼 수 없게 된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타인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고 잠시 멈추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게 됐다. 기다릴 줄 아는 자세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판단하지 않는 힘’에서 저자는 자신의 판단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는 태도를 가져야 함을 역설한다. 확신을 멈추려는 의지는 무책임이 아니라 용기이며, 결국 자신을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판단을 미루는 것만으로도 맥락과 상황을 고려할 수 있게 되고 잘못 판단하게 되는 오류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 일 이후, 다른 사람을 섣불리 내 기준으로 재단하고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본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일 것이라고 추측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문화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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