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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똑같은 각본의 드라마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뻔한 각본의 드라마다. 전운이 감도는 회의장에 비장한 표정의 양측 위원들이 들어선다. 기선 제압용 발언이 오가며 신경전을 벌인다. 몇 차례 회의 끝에 최초 요구안을 제출한다. 한쪽은 두 자릿수 인상률, 다른 한쪽은 삭감 또는 동결이다. 각자 이유를 대며 죽는 소리나 앓는 소리를 한다. 마음에 안 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집단 퇴장도 연출한다. 강대강 대치로 난항을 거듭하다 각자 수정안을 낸다. 그래도 격차가 커 타결 난망이다. 이때 정부 추천 공익위원들이 중재 구간을 제시하며 합의를 유도한다. 양측은 계속 버틴다. 결국 공익위원 중재안이나 그들의 표심이 반영된 표결로 지루한 싸움은 막을 내린다.

매년 반복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줄다리기 광경이다. 드라마의 양대 주인공은 해마다 혈투를 벌이는 근로자위원들과 사용자위원들이다. 지난해에는 2020년도 최저임금을 놓고 19.8% 인상한 1만원(노측), 4.2% 삭감한 8000원(사측)의 최초안으로 시작해 2.9% 오른 시급 859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한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2018년도 16.4%, 2019년도 10.9% 올랐다가 부작용이 나타나자 소폭 인상에 그친 것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 첫 전원회의가 오늘 열린다. 노·사·공익위원 9명씩 27명이 참석한다. 이번에도 노사는 동상이몽이다. 미증유의 코로나 사태에도 노사 논리는 변함이 없다. 노측은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해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사측은 경영난에 처한 기업들을 위해 동결하거나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올해도 소모적 논쟁을 벌이다 법정 시한(6월 29일)을 넘겨 공익위원안(또는 표심)으로 마무리될 게 뻔하다. 이럴 바에야 결정 제도 자체를 확 바꿔야 한다. 지난해 최저임금위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개편안이 나왔으나 무산됐다. 제도를 합리적으로 뜯어고쳤으면 한다. 그게 어렵다면 차라리 각종 경제지표와 계산식으로 무장한 인공지능(AI) 로봇에 맡기는 게 낫겠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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