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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마녀와 과자의 집

배승민 의사·교수


한국 영화와 음악이 전 세계를 휩쓸든, 전염병이나 국제적 위기가 지구를 마비시키든 그 어떤 사안이 닥쳐도 소아정신과 의사의 직업병은 ‘그래서 아이들은?’인 것 같다.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교육이 뒷전일 수밖에 없는 상황. 어른들이 무너져갈 때 다시금 묻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먹고사는 게 시급한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해도 집 안 아이들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노파심을 거둘 수가 없다. 아무런 노력 없이 아이들이 안전한 가정에서 건강히 보호받을 거라 믿는 것은 맥없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아무리 십여 년 넘게 범죄 피해자들을 대하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어도, 어린 아이들이 피해자인 사건은 나뿐 아니라 많은 치료자들마저 휘청이게 한다. 이럴 때 이 불편감을 가장 손쉽게 떨치는 방법 중 하나는 가해자를 악마화하는 것이다. 평범한 나와는 전혀 다른 악당. 가족 구조, 인종, 직업 등 어떻게든 나와는 다른 꼬리표를 찾아 그들을 벌하고, 보편적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안전한 ‘우리’만이 남길 원한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와 선을 그어 그들을 타자화해도 그것은 잘못 채워진 단추가 될 뿐이다. 기사에 종종 등장하는 가해자는 나와는 거리가 있는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것 같지만, 세계 각국의 각종 통계와 연구에서 밝혀진 대다수 아동학대 가해자는 남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친부모이기 때문이다. 동화 속에서 아이들을 과자의 집으로 꾀어낸 것은 마녀이지만, 애초에 아이들을 짐승들한테 잡혀 먹힐 숲속으로 떠민 것은 계모의 손을 빌린 친아빠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동안 많은 아이를 잃었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이 한 아이를 구했다. 당장의 위기를 벗어난 그 아이에게,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 말고 정말 필요한 것이 없을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도 함께.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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