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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작은 지구당’을 허하라

손병호 논설위원


원외 정치인 지역사무실 설치 및 정치활동 막는
현 정당법은 현역에만 지나치게 유리해
‘생활정치’ 확산 추세 감안해 지역구 정치활동
제한 없애고 비용 적은 지구당 허용 필요

4·15 총선 때 서울에서 낙선한 미래통합당의 한 전직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지금 당에 절실한 것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같은 선거 기술자가 아니라 지구당 부활이라고 했다. 지구당이 부활하지 않고선 앞으로 모든 선거에서 판판이 깨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주호영 원내대표가 원 구성 협상에서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고집할 게 아니라 상임위원장 자리를 다 내주더라도 지구당을 부활할 수 있게 정당법 개정 약속을 받아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왜 지구당일까. 지구당은 2004년 오세훈법 때문에 사라졌다. 그 이전까진 원외 위원장이라도 지구당 사무실에서 정치활동을 하고, 후원회도 둘 수 있었다. 그런데 지구당을 두면 그만큼 돈 쓰는 정치를 하게 된다는 이유로 폐지됐고, 후원금도 거둘 수 없게 됐다. 이로써 원외 인사들은 예비후보 등록(선거 4개월 전)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지금 정치 현실이다. 반면 현역 국회의원은 임기 내내 지역구에 사무실을 둘 수 있고, 후원금도 거둘 수 있다.

요즘 여야를 막론하고 낙선한 정치인들은 기존 지역구 사무실을 ‘포럼’ ‘연구소’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다느라 한창 바쁘다. 정당법에서 원외 지역위원장이 정당의 하부조직으로 정치활동을 위한 사무소를 둘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낙선하면 돈이 없어 사무실을 유지하기도 어렵지만, 설사 사무실을 내도 거기에서 정치활동과 관련해선 어떤 것도 해선 안 된다. 당원들과 회의를 하거나 당원 명부라도 관리했다간 바로 정당법 위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을 낸 일부 정치인들은 몰래몰래 당원도 만나고, 지역 일도 챙긴다. 그걸 눈감아줘서 그렇지 만약 작심하고 수사한다면 아마 사무실을 둔 원외 인사들은 거의 100% 법에 걸릴 것이라고 한다.

여당은 2년 전 지방선거를 싹쓸이했고, 지난 총선에서도 압승하면서 영남을 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상시적으로 지역 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여당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이 같은 지역을 이중으로 관리하는 곳이 많아 시너지 효과도 크다. 반면 통합당 원외 인사들은 사무실조차 변변치 않고 정치활동도 제한돼 있어 아주 힘들어하고 있다. 이런 정치 토대에서는 앞으로 그 어떤 선거 기술자가 와도 통합당이 이기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기울어져도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임에 틀림없다. 비단 당선자와 낙선자 간에만 기울어진 게 아니라 지구당 설치 금지는 현역 국회의원·단체장과 정치 신인들 간의 불공정한 경쟁을 초래한다. 이런 지적이 전에도 있었지만 현역 국회의원이 똘똘 뭉쳐 정당법 개정을 번번이 막아 왔다.

하지만 이제는 원외 정치인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볼 때다. 요즘 정치가 이념 대결보다는 생활정치로 변모하고 있는 추세에 비춰서도 그게 맞는다. 마침 여야 모두 정쟁에서 벗어나 국민들 삶을 구석구석 살피는 정치를 하자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생활정치와 풀뿌리 민주주의가 가능해지려면 지역구 밀착형 정치활동이 필수적이다. 학계에선 심지어 생활정치를 활성화하려면 중앙당 설립요건을 완화해 소지역에 특화된 ‘서대문구당’ ‘명동당’처럼 더 작은 단위의 당들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여당으로선 현 정치 지형에서 정당법 개정이 달갑지 않겠지만, 돌이켜보면 과거 여당에서도 지구당 부활 필요성을 틈틈이 제기했었다. 2018년에 우원식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21명과 심상정 등 정의당 의원 3명이 낸 ‘노회찬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이 바로 지구당 부활과 후원회 설치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 전 의원이 원외 시절 받은 정치자금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했었기 때문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인사청문회 때 원외 시절 지역구 사무실에서 한 활동이 정치활동이네 마네 하는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그런 불행과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작은 지구당’을 부활해 원외 인사들에게 정치활동을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 지구당 설치만 허용하고 후원금을 걷을 수 없게 하거나, 사무실 운영에만 필요한 아주 최소한의 정치자금만 걷게 한다면 ‘돈 정치’ 우려도 해소될 것이다. 지구당 부활이 부담된다면, 적어도 지역구에 자기 돈으로 사무실을 내고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게는 해줘야 한다. 그게 생활정치 강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부합한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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