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예수의 흔적, 우리의 존재 목적

마가복음 10장 45절


존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무엇 때문에 존재할까요. 바로 예수의 흔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독생자 보혈로 구원하신 우리를 고통도 사망도 없으며, 날빛보다 밝은 천국에 부르지 않으시고, 괴로움과 죄가 있는 이 땅에 두실까요.

세상을 사는 동안 예수의 흔적을 입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라는 명령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섭리에 감격했습니다. 그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종교 지도자와 군중의 돌에 깨진 몸으로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만난 스데반 집사, 땀과 눈물에 얼룩져 심장을 사역지에 묻었다고 고백한 리빙스턴 선교사, 우상숭배를 거부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도 존재 목적인 예수의 흔적을 입었습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도 예수의 흔적에 있습니다. 예수의 흔적은 십자가입니다. 동시에 면류관입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면서 우리를 초청했습니다. 우리가 새겨야 할 예수의 ‘종 되신’ 흔적은 죄인을 위해 돌아가신 십자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재림하는 날 우리에게 안겨지는 왕의 왕 그리스도의 흔적은 면류관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4절에는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필수적인 십자가는 천국에서 필연적인 면류관의 모형이며, 십자가와 면류관의 크기는 정비례합니다.

우리를 울게 하는 십자가로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는 면류관을 만드십니다. 윌리엄 펜은 십자가가 없는 면류관은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도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며 전율했습니다.

예수의 흔적은 십자가이자 면류관입니다. 예수의 흔적은 우리에게 어떻게 새겨질까요. 낮은 마음과 높은 천국의 영역에 확립한 자아로 드러납니다. 주님의 마음은 낮은 곳에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와 함께 우셨고, 쓰러진 영혼을 세우시려 낮아지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낮은 골짜기에 모여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이르는 곳마다 황무지에 장미꽃이 피어나듯 기적을 배달합니다. 사도행전 20장 25절에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언행일치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는 겸손하게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기고 베풀며 살면 됩니다. 무엇보다 사랑의 팔을 펴면,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변합니다. 그 팔을 펼수록 더 크고 둥근 원을 그리는 컴퍼스처럼 사랑의 팔을 펴는 제자는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나의 원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신앙관이 필요합니다.

이런 신앙관이 예수의 흔적을 우리에게 입혀줍니다. 모든 존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은 이뤄내야만 달성할 수 있습니다. 존재 목적을 이루면 주변이 변화합니다. 하물며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던 예수의 흔적을 입은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비정상이 정상처럼 돼 버린 시대를 살게 됐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존재 목적을 이뤄 변화를 선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결국 예수의 흔적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정균양 목사(국제독립교회연합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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