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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합죽선

오병훈 수필가


요즘 거리에 나서면 더위를 쫓으려고 손선풍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그렇지만 여름의 운치라면 역시 부채. 모시 적삼 차림으로 대청에 앉아 부채질하며 매미소리를 듣는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가시는 것 같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 이상의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 특히 합죽선은 세계 최초로 우리 선조들이 발명한 위대한 문화유산이 아닌가.

합죽선은 쓰임새가 많다. 갑자기 비라도 내리면 머리에 얹어 비를 피했고, 좁은 길에서 남의 부인을 만나면 살짝 얼굴을 가려 선비의 예를 지켰다. 사랑에서 주인이 합죽선을 접어 손에 쥐면 하인들을 호령하는 지휘봉, 때로는 시조창을 할 때 장단을 맞추는 음악적 소도구가 되기도 했으니 이보다 더 요긴한 휴대품이 있겠는가. 그래서 옛 선비들은 합죽선에 선추(扇錘)를 달아 멋을 부렸고 언제 어디서나 손에서 놓지 않았다.

동양문화는 중국에서 이웃나라로 전래된 것이 많지만 합죽선만큼은 고려에서 맨 처음 만들었다. 송대의 곽약허는 ‘도화견문지(圖畵見聞誌)’에서 ‘고려인들은 접첩선(摺疊扇)을 사용한다’고 기록했다. 또 문신 서긍이 고려 땅을 돌아보고 풍물을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고려인들은 한겨울에도 부채를 들고 다니는데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다’고 적었다. 단순히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 이상의 기능을 가진 합죽선. 선비의 품위를 지키고 신분을 과시하는 휴대품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전주에 부채를 제작하고 관리하는 선자청(扇子廳)을 두었다. 부채를 만들려면 좋은 한지와 대나무, 숙련된 장인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전주에서 한지와 죽공예가 발달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고 수백 년 전통문화를 지켜온 결과다. 시원하기로는 에어컨도 좋고 선풍기를 따를 수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합죽선은 운치가 있다. 멋이 있다. 오늘도 합죽선 한 자루를 가방에 넣고 여유 있게 집을 나선다.

오병훈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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