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수업이 더 대박!’ 구미 사곡고의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

[코로나가 바꾼 학교 현장을 가다] <상> 실시간 쌍방형 100% 구미 사곡고

경북 구미 사곡고등학교에서 지난 9일 오전 역사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학교 교사들은 ‘야! 너두 이제 등교할 수 있어!’ ‘어서와 여름 등교는 처음이지?’ 같은 플래카드를 교실에 걸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오랜만에 만난 제자들을 환영했다.

지금 학교 현장에선 모든 초·중·고 학생이 원격수업과 대면수업을 번갈아 듣는 초유의 교육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서 미래형 학습법으로 일컬어지던 ‘블렌디드 러닝’(온·오프라인 병행 수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갑작스럽게 모든 학생·학부모·교사들의 현실이 돼 버렸다. 아직은 우왕좌왕하는 학교가 더 많지만 위기를 기회 삼아 대처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코로나19에 ‘등 떠밀린’ 변화 대신 능동적으로 교실을 바꿔보려고 팔을 걷어붙인 학교 현장들을 둘러봤다.

보건의료 계열로 대학에 진학하려는 고3 수험생 수진(가명)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개학이 미뤄져 집에 있을 때 국어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은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의 읽을 부분을 소개하고 책 리뷰 자료 몇 개를 알려주고는 이미 제출한 보고서를 다시 써보라고 했다.

수진이에게 주어졌던 과제는 EBS 수능 연계교재 중 비문학(독서) 지문을 하나 골라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수진이는 자신의 진로와 관계 있는 ‘복제자 이론’이란 지문을 골랐다. 찰스 다윈, 리처드 도킨스 등 진화학자들의 이론이 담긴 글이었다. 수진이는 처음 보고서에서 “수업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배웠는데 다른 학자의 견해도 있었다. (중략) 미래엔 더 다양한 형질을 가진 생물이 나올 텐데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썼다.

보고서를 읽은 교사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해석하는 힘이 부족해 글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보고서에 담지 못한 듯했다. 그래서 ‘이기적 유전자’를 펼쳐놓고 수진이에게 도움될 부분을 메모하고 전화를 걸었다.

다시 제출된 보고서는 한층 생동감 있었다. “책은 생물을 단지 생존을 위한 기계로 규정하고 있다. 인간 존재를 탐구해온 철학자들이 분개했을 것”이라며 “부모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부모의 양육이 이기심의 발로라는 관점은 충격적”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인간만이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한다는 ‘밈’이란 개념에 끌렸으며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고 덧붙였다. 학생이 지적인 자극을 받았음을 확인한 교사는 흐뭇했다.

지난 9일 찾은 경북 구미 사곡고등학교에서 원격수업이 이뤄지던 시기에 있었던 일이었다. 수진이가 수행한 과제는 국어교사들이 머리를 맞대 고안한 고3 학생용 가정학습 프로그램이었다. 수능 준비와 학교생활기록부 작성도 가능한 ‘영리한’ 과제였다.

교사들은 집에서 EBS 수능 연계 비문학 교재를 풀도록 했다. 비문학 교재에는 인문·예술·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의 글이 실려 있다. 수능에선 EBS 교재 지문이 응용돼 나온다. EBS 지문을 추가 조사해 심화된 정보를 파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덧붙여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관련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기록할 수 있다.

과제 참여 인원은 3학년 208명이었다. 교사들은 보고서를 읽고 피드백을 주느라 상당한 품을 들여야 했다. 교사들은 “개학 연기 기간에 고3이 예년보다 덜 바빠 시도해볼 수 있었다. 평소 교실 수업에서는 비교과 지문의 전문적인 내용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 부족해 아쉬웠다”면서 “아이들이 진로와 관련해 이해하고 싶은 개념을 공부하는 시간이 됐다는 반응이 돌아왔다”고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가능했던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학교는 모든 원격수업을 실시간 쌍방형으로 진행한다. 교육부가 제시한 원격수업 방식은 3가지다. 화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하는 실시간 쌍방형, 학습 진도에 맞는 동영상 강의를 수강토록 하는 콘텐츠 활용형, 과제 수행형 등이다.

교실 수업과 가장 흡사한 100% 실시간 쌍방형 방식을 택한 학교는 많지 않다. 고교학점제 시범학교로 원격수업 인프라가 잘 깔려 있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학교 전체가 와이파이 가능 구역인 데다 모든 교실에 전자칠판이 설치돼 있고 교사에겐 원격수업용 스마트기기가 보급돼 있었다. 노순광 사곡고 교장은 “실시간 쌍방형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원격수업에 익숙하지 않은 교사들이 처음에는 암담해 했는데 다른 교사들과 소통하며 단기간에 적응했다”며 “지금은 실시간 쌍방형 수업이 더 편하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실시간 쌍방형 수업은 교사들에게 보이지 않는 경쟁을 유발하는 듯했다. 교사들의 경쟁은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실시간 쌍방형 수업은 공개수업이나 다름없다. 수업 잘하는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스타 대접을 받는다. 지리의 이의미 교사가 이런 경우다. 등하굣길에 만난 학부모들이 “선생님 수업 잘 봤어요”라고 말을 건넨다고 한다. 장명순 교감은 “실시간 쌍방형 수업을 하면 (학부모가 참여하는) 교원능력개발평가를 할 이유가 없어진다”며 “수업 잘하는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지지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 학교 박수경 수석교사는 자신의 원격수업을 다른 교사에게 공개한다. 원격수업 교수법을 배우려는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고2 영작 수업이 진행된 지난 9일 박 수석교사가 스마트기기 속 학생들과 끊임없이 문답을 주고받는 모습을 학생 자리에 앉은 교사들이 경청했다. 장 교감은 “코로나19 이전에는 볼 수 없었지만 이제는 생소하지 않은 모습”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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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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