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대통령과 국민이 죗값받아야 하고 쓰레기 된 상황
하다하다 이젠 옥류관 주방장까지 나서 경멸적 언사로 공격

대북전략 잘잘못과 비현실성 점검해볼 때…
국가지도자의 생각 알고 싶고 품격과 권위 있는 대북정책도 보고 싶다

자고 일어나 보니 졸지에 죄인이 됐고, 쓰레기가 됐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13일 한밤중 발표한 담화에는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깨깨(몽땅) 받아내야 한다”는 표현이 있다.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라고도 했다. 사람을 향해 ‘~하는 것들’이라는 것은 쌍욕 말고는 가장 경멸적인 표현이다. 세금 꼬박꼬박 내고, 군대 갔다 오고, 정부의 방역 수칙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나와 내 가족, 내 친구들에게 ‘~하는 것들’이라며 죗값을 묻는단다. 그저 깨질까 봐 저자세를 보이고 꾹 참고 달래가며 해온 결과가 이거라면 이젠 따져볼 때도 됐다. 그동안 뭐가 잘못됐는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 의도대로 하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현명한 것인지, 궁극적 국가 이익을 위한 방향 설정은 잘 돼 있는지, 국가 리더십과 현장 실무 능력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말이다.

남북 관계는 정상적이고 공개적이고 이성적인 영역이 아니다. 그랬다면 수십년 동안 이렇게 굴러왔을 리 없다. 비정상적이고 비밀스럽고 감정적인 영역이다. 그러니 양쪽 지도자들의 생각과 정치적 이익이, 남북관계를 내부 정치에 활용하려는 그들의 의도가 한반도 상황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3대 세습한 북한이야 워낙 비정상이고 , 생존 방식이 독특해 의도나 방향을 별로 분석할 가치가 없다. 우리가 협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대이니 그 생각을 알아봐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있을 뿐이다. 북한의 방식은 심지어 중국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시쳇말로 북한은 우리가 ‘요리’하는 게 맞는다. 설사 핵무기를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절대무기를 상대할 수 있는 절대전략은 이론상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만으론 힘에 부치니 국제사회나 동맹과의 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중 한 방식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였고, 그게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해 북한의 평화적 제스처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2년여 흘러 평화는 파국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상황이 바뀌면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전략을 바꾸지 않겠다면 기존 전략의 유용성과 타당성을 증명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전략과 국가의 대북 전략을 설명해야 하는 이유다. 설득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설득하고, 국민이 대북 저자세라고 오해한 부분이 있다면 오해를 풀 수 있도록 해명해야 한다. 국민은 쓰레기도 아니고, 죗값이라고 들을 만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건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와 보수가 철학이 다르고 방향성이 다르다고 국익을 해치는 건 아니다. 그건 전략과 방법의 차이에서 기인할 수 있다. 그걸 판단하려고 구체적인 정책을 평가하고 주기적인 선거를 한다.

도저히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험한 말을 북한이 해대는데도 가만히 있기는커녕 김여정이 한마디하자 즉각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겠다는 여권의 정치인들도 정상은 아닌 듯하다. 북한의 몇몇 기관이나 하급 실·국장까지 나서더니, 이젠 하다하다 옥류관 주방장까지 대통령과 정부 고위 인사들을 향해 “국수를 처먹을 때” “요사를 떨고”라는 욕설을 퍼붓는다. 그런데도 여권 인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다. 이런 걸 듣고 있는 국민 심정은 생각해 봤나. 내부에서 대통령이나 조국, 윤미향을 공격하면 벌떼처럼 일어나는 ‘기개’는 다 어디 갔나. 북한 공격에는 반응하지 말아야 하는 불문율이 있는가. 남북 관계를 나름 관리하려는 심모원려나 보통 사람이 모르는 심오한 대북 전략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있다 하더라도 정도와 수준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김여정의 위상 제고나 내부 결속력 다지기를 위한 필요성 때문에 북한이 파국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겠다. 또 한·미로부터 뭔가 얻을 것이라고 북한 내부에 한껏 기대치를 줬다가 결과가 없으니 책임을 남한에 돌리려고 선동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것이든 결과적으로 한반도 상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북 전략 전반에 관한 점검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생각도 국민이 좀 더 명료하게 알아야 한다. 대북 정책도 품격을 고려해야 할 때가 됐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내부적으로 매우 필요한 때다. 시기를 놓치면 더 엉킨다.

편집인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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