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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사회적 대화, 대타협의 집착을 버려야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협상에 피치를 올리고 있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새로운 실험이다. 전에도 여러 형태의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있었지만 노사정위원회라는 기존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총리가 직접 나선 데다 민주노총까지 참여시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밖에서 대화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총리 자신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노사정위원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경험이 있고, 사회적 대화에 애정도 남달라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에서 대타협의 길을 열어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3년 정부의 온갖 정성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참여조차 거부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노사 모두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 조직 이익에 앞서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저임금 불안정 고용 계층을 먼저 고려하겠다고 다짐했지만 행동으로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이른 시일 내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대화를 주도하는 총리가 가장 큰 압박감을 느끼겠지만 노사정 누구도 대타협의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대타협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30년 가까이 네덜란드의 사회적 대화 중심에 있었던 빔 콕 전 총리는 대타협에 대해 매우 담백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늘 진심 어린 대화에도 합의할 수 없다면 그걸 확인한 것 또한 귀중하다고 생각했다. 점 하나라도 합의해야 한다는 집착이 오히려 온전한 대화를 방해하고 합의에 독이 되는 사례를 우리는 여러 차례 경험했다. 말만 앞서는 합의문이 아니라 노사정이 각각의 셈법을 내려놓고 국가 공동체가 처한 위기 극복을 위해 연대와 협동의 정신을 발휘하겠다는 의기투합이 먼저다.

IMF 위기 극복을 위한 1998년의 대타협 때에는 국민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노동계 지도자들의 결단과 용기가 빛났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재계가 리더십을 발휘했다. 특히 지금은 고인이 된 LG 구본무 회장이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밝힌 “당장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된다”는 당부가 경영계 전체에 큰 울림을 줬다. 노동계도 고용이 유지된다면 임금과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해 워크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이 해법으로 받아들여졌다.

끝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노사정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함께 버티기다.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며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방안을 함께 강구하겠다는 협력의 자세야말로 최상의 선택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노동계가 총고용 보장과 전 국민 고용보험 보장을, 경영계가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 및 노사 협력을 요구한다고 한다. 노사가 여기에만 집중한다면 약간의 조정을 거쳐 합의안이 도출될 수도 있다. 예컨대 경영계도 최소한 코로나 위기가 진정되고 경제활동이 정상화될 때까지는 총고용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하는 대신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계의 협조를 요구할 수 있다.

특히 정부 지원금을 받는 기업의 경우에는 당연히 일정 기간의 고용유지 의무가 부과돼야 한다. 법인세 인하는 전면적으로 하기에는 쉽지 않더라도 리쇼어링 기업이나 피해 업종을 위한 지원책으로는 고려할 만하다. 산업 규제 문제도 스타트업 단계의 기술기업에 한해 생명과 안전 이외의 규제를 3~5년 파격적으로 완화해주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이로써 꽉 막힌 청년 고용에 숨통을 열어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미 큰 틀의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 전 국민 고용보험을 위해 노사의 보험료 인상과 사각지대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 방안 등을 묶는다면 대타협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누구든 대타협을 명분으로 밀린 숙제를 합의서에 밀어넣으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은 정부가, 노사가 할 일은 노사가 하면 된다. 곧 본격화될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도 온전히 최저임금위원회에 맡기는 게 원칙이다. 대화를 시작했던 초심에 충실한 소박한 합의를 기대한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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