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점에서 미래통합당에 쓴소리 하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그러나 상황이 엄중한데다 방향도 잘못 잡고 있는 것 같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충격적인 총선 패배 이후 두 달이 지났지만 통합당에는 여전히 세 가지가 보이지 않는다. 첫째, 와신상담의 치열함이나 절박감이 없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서울 여의도 공터에 임시 ‘천막 당사’를 세웠다. 참회의 의미로 84일 동안 줄곧 그곳에 머물렀다. 국민을 향해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처절하게 호소했다. 그때 그 결기나 각오에 비하면 지금 형세는 느슨하기가 ‘웰빙 정당’ 수준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국민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이다.

둘째, 야당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철저한 반성이 없다. 역대급 참패를 당하고도 덤덤하다. 2017년 탄핵 때도 그랬다. 그냥 어영부영 넘어갔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보수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보수 정치인들이 실패한 것’이라고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보수 정치인이 잘못되면 보수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 총선 직후 어느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통합당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당의 대표 인물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가장 큰 이유였다. ‘약자와의 동행’ 등 그 어떤 분장을 하더라도 사람이 시원치 않으면 백약이 무효이다. 당을 ‘싹 다’ 바꾸고 세대교체를 단행해야 한다.

셋째,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다. 이건 보수가 아니다. 통합당에 희망을 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진짜 보수는 발전적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은 보수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기에 자신의 한 몸을 기꺼이 던진다. 남보다 앞서 그렇게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보수주의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는 ‘국민의 안락과 즐거움, 만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양의 보수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그렇지 않다. 총선이 끝난 뒤 야당의 한 고위 지도자가 후원자들을 만났다. 그는 왜 그리 빨리 당직에서 물러났느냐는 질책성 질문에 ‘더 남아 있었으면 내가 받는 대미지가 훨씬 컸을 것’이라고 대답했단다. 조직보다 자신의 안위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이게 보수냐.

이 마당에 보수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이 속속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기껏해야 2% 지지율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낙연 의원이 28%, 이재명 경기지사가 12%를 기록한 것에 비해 처참한 수준이다. 지금 그들이 그럴 때가 아니다. 무슨 염치로 ‘마지막 도전’ 운운하는가. 야당을 이 모양으로 만든 것에 대해 석고대죄부터 하라. 통렬하게 반성하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라. 이것이 보수 재건의 첫걸음이다.

김무성 전 통합당 의원은 보수 진영의 ‘킹메이커’를 자임하고 나섰다. 킹메이커,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희생이라는 보수 본연의 덕목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영국 보수당은 그렇게 했다. 노동당에 빼앗긴 정권을 되찾기 위해 38세의 데이비드 캐머런이 당수로 추대됐다. 캐머런은 그다음 총선에서 이겨 총리가 됐다. 젊은 캐머런을 당수로 모신 사람은 보수당의 원로 정치인들이었다. 이것이 보수의 품격이다.

지금 야당의 자칭 대통령 후보들이 해야 할 일도 바로 이런 것이다. 진정 보수라면 이제 ‘퇴장의 미학’을 선보여라. 30, 40대 젊은 후배들을 앞세우고 그들을 밀어줘라. 이게 야당의 중진, 원로가 담당해야 할 마지막 역할이다. 지금 세상에 나이는 더이상 문제가 아니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40세에 프랑스 대통령이 됐다.

야당의 신진세력이 2년 후 대통령 선거에서 ‘총알받이’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구국의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일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대선 2년 전에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 정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원로들이 진심으로 희생의 업보를 쌓으면 정권을 되찾을 수도 있다. 그 덕에 그들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 이것이 보수정치의 정도이다.

서병훈 숭실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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