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독립운동 일본은 어떻게 봤을까

‘3·1운동 일본 언론 매체 사료집’ 완간 양현혜 교수


우리나라는 3·1운동을 비폭력과 민주공화제를 추구한 독립운동으로 기억한다. 당시 조선을 무단 통치했던 일본은 이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조선의 독립운동을 일본 언론매체의 시각에서 바라본 책이 최근 완간됐다. 지난해 3월 ‘도쿄아사히신문 편’으로 시작된 ‘3·1운동 일본 언론매체 사료집’(홍성사) 6권이다. 양현혜(59·사진) 이화여대 기독교학부 교수와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의 박은영 HK연구교수, 김도형 책임연구원이 2016년부터 일본 매체 14곳의 기사 3036건을 수집한 결과다. 자료집에 실린 일본 매체 기사는 현지 도서관에서 직접 일일이 열람해 정리한 것이다. 1919년 3월부터 1920년 초반까지의 조선 관련 기사를 망라했다.

사료집 편찬위원장 양 교수는 지난 8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마침내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 홀가분한 마음”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이번 사료집의 중요성에 공감해 후원에 나선 양화진문화원과 책 출간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후원자와 단체에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사료집에는 도쿄아사히신문(東京朝日新聞)과 고쿠민신문( 民新聞), 오사카마이니치신문(大阪每日新聞),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 요로즈초호(万朝報) 등 주요 신문뿐 아니라 주오코론(中央公論) 등 사회과학잡지 기사의 일본어 원문 및 해제가 실렸다. 해제엔 해당 매체의 특성, 3·1운동 관련 보도 내용이 요약돼 있다.

3·1운동에 관한 일본 매체의 논조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했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3월 8일 오사카마이니치신문은 3·1운동이 ‘폭동’이라며 ‘무지와 미신에서 비롯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한 달여 뒤엔 일본 언론의 논조가 다소 바뀐다. 도쿄아사히신문 4월 5일자 ‘식민지 통치의 혁신’이란 제목의 기사에선 “요란(擾亂)의 유력한 원인이 우리 총독 정치의 결함에 있음은 유감스러우나 사실이다”고 밝힌다.

이들 매체는 3·1운동 이후의 독립운동도 비중 있게 다뤘다. 상해임시정부와 여성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사건, 여운형 이승만 안창호 등 애국지사의 소식을 지면으로 전했다. 또 ‘조선폭동이 경제상 미치는 영향’ 등의 기사를 실어 3·1운동이 조선 경제와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도 분석했다.

양 교수는 “일본은 오늘날까지도 3·1운동에 관해 망각으로 일관하려는 반면, 한국은 이를 기억하려는 입장”이라며 “이런 차이를 메울 때 양국 관계가 미래지향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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