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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유화정책

배병우 논설위원


국제정치학에서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은 갈등을 피하려고 공격적인 세력에게 정치적·물질적 양보를 하는 외교정책을 가리킨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태두인 한스 모겐소는 기존 권력 분포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현상변경세력의 위협에 현상유지 정책으로 대응하는 게 유화정책이라고 했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전 나치 독일의 히틀러에게 양보 조치를 거듭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의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히틀러의 계획된 도발을 달래기로 일관한 게 2차대전의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 정설이다.

체임벌린의 실패 이후 유화정책은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될 외교적 실패의 대명사가 됐다. 국방부의 김정섭 박사는 “그러나 유화정책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강압과 억제도 필요하지만 유화정책이 효과적인 때도 있다”고 했다. 2차대전 전에는 단호한 대응이 필요했고, 1차대전 때에는 독일을 달래야 했었다는 것이다. ‘유화정책=나쁜 것’이라는 일반화는 맞지 않는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미래통합당은 “문재인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은 파탄 났다”고 했다. 이번 정부의 대북정책이 유화정책이라는 데 대해선 별 이견이 없다.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하는 건 맞는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실재하며 갈수록 커지는 북한 핵 위협을 못 본 체했다. 영변 핵 시설 외에 평양 남부 강건의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 등이 드러났는데도 별것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9·19 남북군사합의도 ‘합의’ 자체에 급급해 북한에 핵심적 이익을 양보한 대목이 적지 않다. 각국이 맺은 군사조약이나 합의를 검증하는 기본 수단은 공중정찰과 감시다. 그런데 9·19 합의는 북한에 대한 공중정찰·감시권을 포기했다. 무엇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호통 한마디에 여당은 헌법에도 어긋나는 ‘대북전단 살포금지법’ 제정까지 들고나왔다. 유화정책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정부의 대북 유화책은 정말 잘못됐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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