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에서 힘이 약한 나라가 힘이 센 나라를 먼저 친 역사가 있던가요?” “그래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그런데 북한이 좋은 말을 안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똑같이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이대로 계속 가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북한이 자꾸 왜 저러지요?”로 시작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아침 식탁 대화다.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 실린 이 대화의 시점은 2009년 3월 6일. 10여 년 전에도 북한은 로켓 은하 2호, 대포동 2호 미사일 등으로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를 어지럽게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대북 정책에서 보통 사람의 상식을 강조한다. 노 전 대통령은 “전략 수준의 안보정책은 사려 깊은 시민의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자꾸 왜 저러지요?” 요즘 북한의 행보를 보는 한국 국민도 똑같이 묻고 싶은 질문이다. 도대체 갑자기 왜 저러는가, 멀쩡한 건물까지 폭파할 정도로 화가 난 이유는 뭔가. 최근 만난 여권 관계자는 “부부싸움 하다가 화가 좀 났다고, 살림살이를 다 때려부수는 사람들”이라며 북한에 혀를 내둘렀다. “북·미 관계 돌파를 위한 지렛대로 한국을 때리는 것이다” “코로나19 등 북한 내부 위기를 돌리기 위해 한국을 외부의 ‘적’으로 상정한 것이다”…. 여러 전문가의 분석을 읽어봐도 어딘지 설명이 부족한 느낌이다. 설명하기 어렵고, 이해하기조차 버거운 나라가 북한의 정체성인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결같이 남북 화해와 협력에 노력을 쏟았다. 북한이 ‘좋은 말’을 할 때나, 그러지 않을 때나 북한을 이해하려고 했다. 어느 순간, 북한은 선을 넘어버렸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그 사진까지 컬러 사진으로 공개했다. 말을 아꼈던 문 대통령도 17일 외교안보 원로들과의 간담회에서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건 큰 충격이고 특히 국민들이 큰 충격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대강’ 대치가 거론되는 지금, 다시 북한에 대한 ‘사려 깊은 시민의 건전한 상식’을 생각해본다. 국민은 남과 북이 평화롭길 원한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막무가내 도발에는 정부가 최소한 국가의 자존심을 지켜주길 바란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을 조롱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기 바란다”고 반박한 것도 국민 자존심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남북이 상호 비방과 군사행동으로 긴장을 위험 수위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시민들의 ‘건전한 상식’에 맞지 않는다. 북한이 막말을 한다고 그 수준으로 막말을 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남북 관계의 끝없는 부침 속에서도 역대 정부가 북한과의 공동선언 등을 통해 대화와 합의를 시도한 것은 같은 이유에서였다. 보수 정부, 진보 정부 할 것 없이 대화를 통한 평화가 가야 할 길이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박정희정부의 7·4 남북공동성명, 노태우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정부의 6·15 남북공동선언, 노무현정부의 10·4 공동선언이 바로 그런 노력의 열매다. 문재인정부는 그 자산 위에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을 쌓아 올렸다.

막말은 하루 만에 휘발되고 말지만, 약속은 그대로 남아 있다. 북한이 ‘막다른 길’에 몰려 고양이를 무는 쥐가 된다면 가장 먼저 물리고 가장 상처가 클 고양이는 한국이다. 남북 관계에 당분간 긴장과 갈등은 불가피하겠지만 결국은 평화적 해결, 대화를 통한 해결이 가야 할 길이다. 우리가 북한과 ‘똑같이’ 해서는 안 되고, 강대강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다.

임성수 정치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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