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에는 어리고 순진한 소년, 브루노가 나온다. 히틀러 시대 유대인 포로 수용소장을 맡은 독일 군인의 아들이다. 브루노는 우연히 집 밖을 나섰다가 철창 너머 유대인 소년을 만나고,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다. 선혈이 낭자하는 장면도 없었는데 충격이 상당했다. 전쟁의 참상과 비인간성을 어린이의 관점에서 풀어내며 ‘네 생각이 정말 맞느냐’고 되묻는 영화였다.

이런 장면이 있다. 어려서 모든 게 궁금하고 이상했던 브루노가 묻는다. “왜 유대인들은 저렇게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쇠창살 안에 갇혀 있어야 하나요?” 어른들이 답한다. “유대인은 해충 같은 존재야. 저들은 악마야.” “유대인은 그래도 돼. 죄를 지었거든.” “유대인은 짐승이야. 짐승은 울타리 안에 살아야 하지.” 무슨 죄를 지었느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세뇌한다. “우리가 벌이는 전쟁은 신성하고, 정당해. 악을 상대로 싸우는 군인들이야말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소중한 존재거든.”

제2차 대전 발발 이후 30여년이 흐른 1970년 12월 7일. 폴란드를 방문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게토(유대인 강제 격리지역) 기념비 앞에 섰다. 비에 젖은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념비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사람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는 그의 말은 유명하다. 정복자에 의해 참이 거짓으로 바뀌고 왜곡됐던 과거의 역사가 올바르게 다시 쓰이는 순간이다.

독일 사례를 보며 박근혜 정권 당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이 떠올랐다. 정부는 다양한 시각의 역사 논의가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니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권력이 나서서 과거를 조작하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우리가 시간여행을 떠날 수 없는 이상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100% 명확히 알 수 없다. 새로운 사료 하나만 나와도 바뀌는 게 역사다. 사람의 관점이 다르기에 역사학계는 정반대 학설과 이론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친일파가 누구인지, 초대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집권세력이 마음대로 할 문제가 아니다. 역사학자와 시민사회가 사료를 바탕으로 갑론을박하며 계속해서 진실을 찾아 나가야 할 사안이다.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과거의 역사를 바꿔 현재를 정당화하고 싶은 욕망의 존재다. 이를 통해 오점을 감추고, 반대 세력을 정통성 없는 집단으로 만들려 한다. 불완전한 인간이 역사를 인위적으로 개조하려는 시도에 많은 이가 분노했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결국 무산됐다. 자칫하면 브루노처럼 순수한 우리 아이들이 가변적인 역사를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살아갈 뻔했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발의한 ‘역사왜곡금지법’이 해묵은 역사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폄훼하거나 피해자 및 유가족을 이유 없이 모욕하는 경우 최대 7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2회 이상 재범 시 곧바로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고, 피해자나 유족의 고소가 없더라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조항을 넣었다.

의도는 알겠다. 극우 유튜버 등이 5·18 민주화운동이나 세월호 참사를 폄하하니 이를 법으로 규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 왜곡 금지를 이유로 양심의 영역을 국가 권력과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앞서 법원도 2018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고, 국민 각자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여러 견해를 피력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광주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아직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건들이 법에 포함되면 극심하고 불필요한 역사논쟁과 이념전쟁을 유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누구도 헌법 전문에 기재된 4·19 혁명 등의 의미를 지적하고, 때로는 왜곡한다고 해서 벌금을 물거나 징역을 살지 않는다. 역사를 느끼고 이해하는 것은 개인의 영역이고,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이러한 역사 해석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일 터다. 차라리 명예훼손이나 악의에 의한 가짜뉴스 처벌 명목으로 왜곡 논리에 대응하는 게 현명할 것 같다.

21대 국회가 문을 열고 열의에 찬 의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건 긍정적이다. 다만 법으로 다스릴 수 없는 영역까지 통제하려는 과잉입법은 좀 피해야 하지 않나 싶다.

박세환 온라인뉴스부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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