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성경 속 식물 ‘가시나무’] 치욕 낙심 불안의 가시덤불 마음에 얽혀 있지 않은가

국민일보DB

성경에 나오는 ‘가시나무’는 죄와 저주, 형벌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사용됐다.(창 3:18, 잠언 15:19, 히 6:8) 특히 구약시대 요담의 비유에서 가시나무는 악한 왕 아비멜렉을 상징한다.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담은 자신의 형제 70명을 죽이고 왕이 된 이복형 아비멜렉을 ‘가시나무’에 비유했다. 자신들(나무들)의 왕이 돼 달라는 나무들의 요청에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겸손하게 거절하지만, 가시나무는 주제넘게도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나섰고 자기 그늘에 와서 피할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삿 9:14~15)

여기서 ‘내 그늘에 피하라’는 것은 그늘 밑에서 편하게 쉬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 밑에 들어와 철저히 복종하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태워버리겠다는 위협이다. 악한 왕을 세운 백성들이 장차 당하게 될 고통을 암시한 것이다.

요담의 비유에 나오는 가시나무는 히브리어로 ‘아타드’라고 한다. 아타드는 요단 계곡과 평야를 중심으로 자라며 큰 나무로 자라서 넓은 그림자를 만든다. 요단 계곡에서 자생하는 가시나무는 농부의 쉼터였다. 이스라엘에선 주검을 운반하다 쉬는 곳이 가시나무 ‘아타드’의 그림자였다. 이스라엘의 헤브론으로 향하던 야곱의 장례 행렬은 요단강을 건넌 뒤 아닷 타작마당에서 쉬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아닷은 바로 아타드 나무를 말한다. “그들이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애곡하였더니.”(창 50:10)

그리스도의 가시

예수님은 아무 죄없이 조롱과 멸시의 가시면류관을 쓰셨다. 로마 산헤드린법정에 한 무고한 청년이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서 있다. 본디오 빌라도가 사형을 선고하자 로마 군인들은 자색 옷을 예수님에게 입히고 관저 마당에서 자라고 있던 가시나무를 꺾어 면류관을 만들어 씌웠다. 그의 이마는 바늘처럼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에 찔려 붉고 붉은 피를 흘렸다.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의 왕 만세’ 하고 외치며 조롱했다. 예수님에게 왕이 되려고 했다는 반역 죄목이 붙여졌다.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1570년 작·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마 27 : 29)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요19: 1~3)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며 고난이 없이는 면류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수난과 고통, 모욕의 상징이기도 한 가시면류관은 어떤 나무로 만들어졌을까. 성경은 가시면류관을 어떤 나무로 만들었는지 기록하지 않았다. 학자마다 의견도 분분하다. 이스라엘 부근에는 10여종의 가시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대추나무다. 대추나무 히브리명은 아타드, 영어명은 Christ thorn(그리스도 가시)이다.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린네가 예수님의 가시면류관을 만든 식물이라고 믿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나무의 가시는 바늘처럼 날카롭고 예리하다. 길이는 짧은 편이다. 나무의 가지는 길게 자라면서 늘어지는 성질이 있다. 로마 병사들이 칼로 쉽게 잘라서 가시관을 엮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대 그리스도교는 대추나무로 가시면류관을 만들었다고 믿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또 다른 가시나무가 있다. 히브리어로 ‘씨림’이라고 하는 나무다. 재미있는 것은 씨림이 솥단지를 뜻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씨림은 꽃이 4~5개의 꽃받침으로 싸여 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솥단지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씨림은 불이 잘 붙고 주변을 삽시간에 태운다. 특히 탈 때 나는 요란한 소리로 유명하다. 솥단지 밑에 있는 아궁이에 불을 땔 때 땔감들이 탁탁거리며 타는 소리와 비슷하다. 전도서 기자는 아무 생각 없이 수다를 떨며 깔깔대고 웃기에 바쁜 우매자의 웃음소리를 솥단지 밑에서 타는 씨림의 요란한 소리에 비유하고 있다.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전 7:6)

내 안의 가시가 찌를 때

요담이 비유한 가시나무는 ‘악한 왕’(아비멜렉)의 상징이었지만, 예수님의 가시면류관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신 ‘만왕의 왕’의 상징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내게로 오면 모든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가시면류관은 희생과 대속을 상징한다. 그의 죽음으로 죄가 죽었고, 부활로 인류는 새 삶을 얻었다.

미국의 작가이자 목사인 맥스 루케이도는 저서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마음은 한 번도 죄의 가시에 찔리신 적이 없지만 우리를 위해 천국의 면류관 대신 수난의 가시면류관을 쓰셨다고 말한다.

“죄의 열매가 가시라면 그리스도의 이마에 얹힌 가시면류관은 그분의 마음을 찌른 우리들의 죄의 결과에 대한 상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수치심 두려움 치욕 낙심 불안 우리의 마음은 가시덤불에 얽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분은 한 번도 죄의 가시에 찔리신 적이 없다…. 그분은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신 일이 없다. 천국의 면류관을 버리고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분의 가장 멋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그분은 당신을 위해 그렇게 하셨다. 바로 당신을 위해.”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듯이 모든 사람 안에 가시가 있다. 가시가 없는 사람은 없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고통 상처 단점이 모두에게 있다. 가시로 인해 낙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바울은 가시가 있는 자리가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자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7~28) 따라서 가시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기도가 필요하다.

이지현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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