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공부되겠어?’ 그랬던 원격수업이 먹히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바꾼 학교 현장을 가다] <중> 원격 자유학기제 도전한 부산 용문중

부산 용문중 중1 국어 원격수업에서 지난 17일 학생들이 한국대표수필75 등 자신이 읽은 책을 보여주고 있다. 용문중은 중1을 대상으로 원격 자유학년제를 실시하고 있다. 학교 교사들은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이 교사와 학생의 1대 1 소통을 활성화하는 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언어를 올바르게 써야 하는 이유는 언어를 바르게 써야 하니까.”

수영(가명)이가 제출한 숙제 파일을 열어보고 안현지 교사가 한숨을 푹 쉬었다. 어렵지 않은 숙제였다. 원격수업에서 시청한 동영상과 자신의 경험을 들어 올바른 언어 사용의 필요성 세 가지를 제시하면 됐다. 수영에겐 어떤 질문을 해도 이런 답변이 돌아올 듯했다. 첫 원격수업부터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었다.

준비단계부터 애먹였던 학생이었다. 전화로 프로그램을 깔고 수업에 어떻게 들어와야 하는지 설명할 때도 “모르겠어요” “원래 그런 거 안 하는데요”라며 툴툴거렸다. 입학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얼굴도 못 본 사이였다. 기초학력 부족으로 자신감이 결여된 학생으로 보였다. 다그치면 더 움츠러들 것이 뻔했다. 중1 대상 원격수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4월 중순 부산 용문중학교 상황이었다.

지난 17일 찾은 용문중에선 안 교사가 교실에 혼자 앉아 원격수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수영이 참여하는 자유학년제 인문학 시간이었다. 중1은 지난 8일 첫 등교 수업을 가졌지만 교육 당국의 ‘격주 등교 방침’에 따라 15일부터 다시 원격수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이날 수업 주제는 ‘행복과 감사’였다. 행복감을 느낄 때 이유를 생각하고 감사할 대상을 찾는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행복과 감사를 테마로 주변 사물을 이용해 미술 작품을 만들어 발표했다.

발표 대상에서 수영은 빠졌다. 어려워할까봐 배려한 것이었다. 안 교사는 다른 학생들이 작품 사진을 올리고 설명하면 잘한 부분들을 칭찬하는 일을 반복했다. 발표가 끝나갈 무렵 수영이 원격수업 시스템에 탑재된 채팅창에 올린 긴 글을 보고 ‘아차’했다. “1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2 마스크 쓰지 않고(원격수업이어서) 선생님과 친구들 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3 주일 예배 끝나고 친구들과 떡볶이 먹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4 오늘도 웃을 수 있는 것, 편하게 잘 수 있는 것, 숨 쉴 수 있는 것 모두 고맙습니다.” 행복과 감사를 담은 번호는 7까지 이어졌다.

수영은 발표하고 싶었고 나름대로 준비도 많이 했던 것이었다. 교사에게 보내온 작품도 훌륭했다. 초콜릿 쿠키에 새우깡, 각종 젤리 등으로 정성스럽게 하트와 사람 모양을 표현했다. 안 교사는 수업을 마친 뒤 수영에게 전화해 작품 설명과 수영의 생각을 들어주고 다음에는 발표 기회를 주기로 약속했다.

원격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용문중 안현지 교사의 모습.

두 달 전 수영이가 아니었다. 안 교사는 원격수업이 한몫했다고 본다. 그는 “오프라인에선 아이들끼리 눈치도 살피고 일부러 눈치를 주기도 해서 정해진 아이만 발표한다. 대면 수업만 했다면 수영이 같은 아이는 눈에 띄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원격에선 직접 마주한 게 아니라서 일부러 말도 많이 걸고 돌아가며 발표도 시킨다. 이 과정에서 제가 리액션을 크게 해주는데 수영이가 여기서 뭔가 자신감을 얻은 걸로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교사도 정확하게 어떤 지점에서 수업 태도가 바뀌었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듯했다. 등교 초반이어서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라고만 했다.

당초 이 학교 교사들은 원격 자유학년제에 반신반의했었다. 통상 1학년에 적용하는 자유학년제는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참여형 수업과 다양한 체험 활동을 진행한다. “얼굴도 못 본 학생들과 참여와 토론이라니”라고 생각하는 교사가 적지 않았다. 현재는 온·오프라인 융합 효과를 주목하고 있다.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은 수영이 사례에서 보듯 교사와 학생의 1대 1 소통을 활성화하는 데 유용하다. 학생끼리 자유토론을 벌일 때는 대면 수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두 방식의 장점을 조합해 프로그램을 만들면 자유학년제가 더 풍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베테랑 교사들도 변하고 있었다. 안정애(56) 교사는 “겨우 카카오톡과 인터넷 쇼핑하는 수준인데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실시간 수업을 하라니 명예퇴직까지 생각했다”며 “그래도 하나씩 배우니까 할 만했다. 젊은 교사들 많이 괴롭혔다”며 웃었다. 정은경(55) 교사는 “소리가 안 난다든지 뭔가 빼놔서 학생 앞에서 당황하기도 했는데 익숙해지니 별거 아니었다”고 거들었다. 두 교사는 교사 연수로는 부족해 같은 과목 교사들끼리 연습용 수업방을 개설하고 서로 교사와 학생으로 역할을 바꿔가며 틈틈이 원격수업 프로그램을 익혔다고 한다.

두 교사는 “원격수업은 조용히 집중하려는 아이와 진도 나가려는 교사에게 유용하다”며 “대면 수업에선 사교육으로 선행 학습한 아이들이 미리 답변해 평범한 아이들의 생각할 기회를 빼앗는데 실시간 쌍방향에선 ‘생각을 채팅창에 올려’라고 하면 대면 수업에선 3~4명 말하는데 온라인에선 절반 이상 대답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윤 교장은 “힘들어하던 고참 교사들도 적응을 끝낸 모습이다. 이제 원격수업의 질을 담보할 수 있으니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폭설과 태풍처럼 학생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생기면 언제든 등교 전에 원격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이번 코로나19로 하나 얻었다고 봐야 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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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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