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폭언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남북 관계가 심각하게 경색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수십년 동안 판문점 도끼 만행, 금강산에서의 관광객 사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이 반복되면서도 남북 관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 남북 관계가 극단적인 긴장 관계로 치닫지 않아서 다행일까?

적대적 대치를 계속하던 남북 관계의 결정적 변화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 및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김영삼정부에서는 북한의 핵 개발을 계기로 대립이 심화됐다. 이후 2000년 6·15공동선언이 있었고,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 노무현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이 계속됐다.

그러나 북한의 핵 개발이 계속되면서,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는 남북한의 대립이 심화됐고,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문재인정부가 출범해 판문점 선언으로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이후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듯했으나 다시금 북한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

우리가 남북한의 긴장과 대치 속에 평생을 지내왔기에 체감하지 못한 것일 뿐, 외국에서는 한반도의 긴장을 매우 심각하게 평가하고 있다. 북핵 문제에 가장 예민해야 할 남한이 가장 둔감한 것에 대해 외국에서 의아해할 정도다. 6·25전쟁 이후 대규모 무력충돌 없이 수십년이 지났으니 이제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남북한의 국력, 특히 경제력의 차이가 압도적이니 북한의 위협은 허풍에 불과한 것일까?

북한의 도발은 적어도 세 가지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 내부 결속을 위한 것이다. 남한을 위협하는 모습을 북한 주민들에게 보임으로써 심리적 우월성을 갖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 원인이 남한에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의 적대적 결속을 촉구하는 것이다.

둘째, 남남갈등을 자극하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로 인해 남한의 결속이 강화된 경우보다는 오히려 내부 갈등이 심화된 경우가 더 많다. 지금도 김여정이 요구했던 대북전단금지법 제정을 둘러싼 남남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셋째, 국제사회 특히 미국을 향한 ‘벼랑 끝 전술’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즉 대선을 앞둔 미국에 북한의 위험성을 드러내면서 대북 제재 완화, 핵보유국 인정 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북한의 도발은 성공한 적도, 실패한 적도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잃을 것이 많다고 느낄 때, 더 많은 양보가 가능하다고 보일 때, 북한의 도발이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남북 관계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할까?

첫째, 남북 관계의 기본적 지향점의 일관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혹은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라 대북정책의 탄력성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헌법 제4조에서 말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라는 지향점은 절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둘째, 북한의 양면성을 늘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평화적 통일을 위한 파트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붕괴시키고 적화통일할 기회를 노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호적인 교류·협력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경계도 늦춰서는 안 된다.

셋째, 남남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우방과의 결속을 강화해야 한다. 합리적인 판단을 벗어난 진영 간의 갈등은 북한의 도발을 부추길 뿐이며, 내부 갈등이 심화되고 우방과의 결속이 약화될 경우에는 우세한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패망했던 월남의 전철을 밟게 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민족적 차원의 교류·협력도 좋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피하고, 남북한의 공존과 공영을 위한 것이다. 북한에 지원하고 양보한 것이 핵과 미사일의 개발로 돌아오고 오히려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군대의 역할은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전쟁을 막는 것이다. 막연한 평화의 환상 속에서 스스로 무장해제할 것이 아니라 평화를 확보할 수 있는 압도적인 전쟁억지력을 갖추는 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이며, 그 바탕 위에 비로소 남북 관계의 정상적 발전이 가능해질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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