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완·박인하의 만화는 시대다] 네 컷에 담긴 촌철살인… 45년간 열어젖힌 ‘시대의 아침’

(25) ‘고바우’ 김성환

‘고바우영감’ 관련 이미지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제공

2019년 9월 8일, 고바우영감은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87세, 작가가 자신 캐릭터의 실제 나이가 되어 찬란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내려다보며 영원한 캐릭터로 남은 것이다. 아침신문을 펼칠 때마다 1면 기사보다도 가장 먼저 “고바우는 뭐라 할까?”라고 전 국민을 궁금하게 했던 김성환 화백, 그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민주주의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가장 쉽고 가장 시원하게 보여준 ‘시대의 아침’이었다.

시대의 아침을 열다

1955년 7월 1일 동아일보에 네 컷 시사만화 ‘고바우영감’이 연재를 시작한다. 본래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 19세였던 청년 김성환이 다락방에 숨어서 혼자 그렸던 캐릭터가 고바우영감이었다. 그로부터 2000년까지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를 거치며 1만4139회의 연재를 통해 말 못하는 국민과 쓸 수 없었던 기자들을 대신했다. 대한민국 최장기 연재로 기록되는 고바우영감은 그렇게 신문의 존재의미를 대변하며 민주주의의 교과서 역할을 독자들에게 선물했다.

1091회분 연재에서 당시 가정집 화장실 분변을 치우던 청소부들끼리 서로 인사하던 4컷 만화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앗! 저기 온다” “귀하신 몸 행차하시나이까?” 같은 분변 청소부인데, 아주 공손하게 절하는 것을 본 고바우영감은 묻는다. “저 어른이 누구신지요?” 주위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답한다. “쉬, 경무대에서 똥을 치는 분이요” 고바우영감 연재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경무대 똥통 사건’이다. 실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을 사칭하던 사기 사건을 풍자한 만화로 벌금을 물게 된 김성환 화백은 이로부터 시대의 정치적 사건마다 고바우영감의 무표정한 질문과 돌발행동으로 독자들이 말하지 못했던 시대의 답답함을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영웅이 된다.

고바우영감 탄생 50주년 기념우표 발간, 세계만화대백과사전에 한국만화가로 유일하게 등재, 1만743매에 달하는 원화가 기록문화재로 등재된 고바우영감. 대한민국의 건국과 전쟁의 현장에서 참화를 그려냈던 작가는 어렵고 못 먹고 살던 피폐한 후진국의 삶으로부터 개발의 역사와 산업화를 통한 성장의 역사, 민주화를 통한 아픔의 상처까지를 그려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꿋꿋하게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우리의 모습에서도 항상 뒤를 돌아보며 초심을 잃지 말라고 매번 확인해주던 노화백은 그렇게 우리에게 역사로 남았다.

지금은 신문을 읽는 독자층과 함께 시사만화를 연재하는 일간지도 예전보다 눈에 띄게 줄었지만, 여전히 시사만화가는 시대를 읽는 방향이며, 모두를 진동시키는 커다란 범종이다. 신문사 사주의 출판기념회에는 참석하지도 않던 유명 정치인들이 시사만화가의 출판기념회에 가득 모이자, 신문사 사주가 시사만화의 힘을 느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런 일화도 있다. 미국의 시사만화가가 네 컷의 만화를 연재하다 세 컷 만화로 연재형태를 바꾸자, 신문사 사주가 그림 칸이 줄었으니, 원고료도 줄여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물론 농담처럼 던진 신문사 사주의 제안에 시사만화가는 이렇게 답한다. “네 컷으로 이야기하는 세상보다 세 컷의 세상 이야기가 더 힘드니, 원고료를 올려주셔야 합니다!” 시사만화는 사설과 칼럼, 그리고 기사가 읽히던 공간의 힘보다 더 묵직한 여운으로 신문을 덮은 아침부터 종일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사색의 공간을 숙제처럼 남긴다. 독자들은 그 숙제 같은 잔상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웠고, 그 기억으로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미국의 한 잡지사 시사만화가가 상원의원에 출마한 목사를 주말 연재 만화 지면을 통해 비판한 사건이 있었다. 유명한 인기 목사였지만 교회자금을 횡령하고, 방만한 교회경영과 부도덕한 여성 편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체 하던 목사의 개인 비리를 조목조목 만화로 그려내며 잡지의 주말 연재를 뜨겁게 달구었던 시사만화가는 결국 상원의원에 낙선하게 된 목사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게 된다. 미국대법원은 연재된 시사만화를 통해 독자들이 목사의 개인 비리를 진짜 사실로 받아들였다는 현실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사유로 무죄판결을 한다. 결국 만화는 독자들이 만화적 표현으로 읽고, 만화적 상상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니 그러한 만화의 표현을 통해 목사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사실은 목사의 개인적 판단일 뿐이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주의의 대변자, ‘고바우영감’

50년 동안 한국의 현대사를 함께 하며 민주주의의 기반을 함께 쌓아 올린 고바우영감 또한 이렇게 만화적 표현과 만화의 상상력으로 세상을 조율하는 메가폰이었다. 한때 3김 시대를 풍미하며 최다선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김종필 총재가 당시 유행하던 ‘모래시계’ 드라마의 여성 주인공으로 그려져 풍자된 시사만화가 화제가 되었다. “시사만화에 여자주인공으로까지 풍자되었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라는 기자의 질문에 노정객은 여유 있게 웃으면 답했다. “시사만화에 내가 그려진다면 아직 살아있다는 거야!” 시사만화는 살아있는 역사이며 고바우영감은 그 역할의 첨병으로서 매번 최전선에 서 있었다.

김성환 화백은 한국 시사만화의 기념비적인 작품 ‘고바우영감’을 1955년부터 1만4139회 연재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세계만화대백과사전에 한국만화가로 유일하게 등재된 김 화백의 ‘고바우영감’은 ‘경무대 똥통 사건’ 등 해학과 풍자를 버무린 에피소드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연합뉴스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난 김성환은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이주했고, 해방 이후 서울로 내려왔다. 아버지의 독립운동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탓에 가족이 한때 뿔뿔이 흩어지는 등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그림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으며, 미술반장을 도맡아 했던 그는 신문에서 김용환 화백의 ‘깡통여사’를 만나며 시사만화를 알게 된다. 해방 직후 연합신문에 ‘멍텅구리’를 연재하게 되면서 전속만화가의 길을 경험한 그가 한국전쟁 발발 이후 의용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숨었던 다락방에서 그렸던 200여명 이상의 캐릭터들 사이에서 고바우가 탄생했다.

성인을 위한 만화로, 표정을 없앤 고바우는 그날의 주제에 따라 기분이나 심리상태를 머리카락으로 표현했다. 평소에는 앞으로 약간 구부러져 있던 머리카락이 놀라면 빳빳해지고, 질릴 정도면 꼬불꼬불해지고, 화났을 때는 똑바로 서는 표현이 바로 고바우의 표정이었다. 이름에는 우리의 민족성을 대변하는 단단한 바위, 크고 단단한 돌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강직한 성품을 지닌 이 인물의 이름은 그렇게 ‘바우’가 됐으며, 가장 적절한 성인 ‘고’를 붙여 고바우영감이 됐다.

1961년 제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1년 제14회 개인전까지 ‘회화’, ‘동양화’, ‘세계풍물화’, ‘고바우 서화 소품전’, ‘그 시절 그 모습’, ‘다정한 편지’ 등 그림과 시대, 역사와 삶에 대한 기록을 예술로 축적해온 노력은 후배작가들에게도 본보기가 되었다. 또한 1987년 ‘1만회 게재 기념전’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었고, 1996년 1월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에 ‘고바우 김성환작품전시실’을 상설전시실로 개관하며, 시사만화가 문화재로서 우리의 역사를 지키고 보여주었다는 증인의 역할을 모두에게 증명해낸다.

이후 2011년 ‘고바우만화상’을 만들어 노력하는 후배들에게 시사만화의 시대정신을 전달하는 의욕을 보여주었고, 사회적 기부 활동도 적극적으로 했다. 2013년 문화재청은 김용환의 ‘토끼와 원숭이’,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만리’와 함께 ‘고바우영감’ 원화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국가는 김성환 화백에게 2002년 보관문화훈장에 이어, 2019년 12월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한다.

“시사만화가 없어진다는 건 중요한 무기 하나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틀어 볼 수 있는 시사만화는 여전히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입니다. 시사만화를 그릴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민심을 읽는 것이지요.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어주는 겁니다. 만화를 그리는 게 제 직업이니 만화를 통해 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성환 화백의 고백은 한국사회를 지탱해온 비판의 비상구를 시사만화로 만들고 지켜왔던 한국민주주의의 시작과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지금도 되풀이되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그것을 지켜내야 하는 우리의 숙명을 대변하고 있다.

한창완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장·만화애니메이션텍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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