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한 전우 이름 성경에 새겨… “그들을 기억하는 게 내 사명이었다”

[6.25전쟁 70주년] 92세 노병 윌리엄 펀체스의 ‘포켓 성경’

윌리엄 펀체스가 지난 12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자택에서 6·25전쟁 때 포로수용소에서 읽던 성경책을 펼쳐 보이고 있다. 현효제 사진작가

“1950년 11월 4일 총상을 입고 중공군에 잡혔다고 성경책에 기록했습니다. 압록강 부근의 벽동 제5포로수용소에서는 숨진 전우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성경책 본문의 해당하는 철자 밑에 작은 구멍을 뚫었습니다.”

92세의 노병 윌리엄 펀체스(William H Funchess)는 70년 전 일을 어제 일처럼 기억해 냈다. 중공군과 격전을 벌인 장소, 1038일간 지낸 포로수용소 상황과 날짜를 정확하게 들려줬다. 그는 주머니에 들어가는 세로 11.43㎝, 가로 6.9㎝의 ‘포켓 성경책’과 함께 전쟁터에서 만난 하나님을 고백했다.

인터뷰는 미국 전역을 돌며 6·25전쟁 참전용사를 촬영하는 현효제 사진작가의 도움을 받아 지난 12일 서면 및 영상으로 진행됐다.

1928년생인 펀체스는 48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클렘슨 칼리지를 졸업했다. 학군사관후보생(ROTC)이었던 그는 졸업과 동시에 미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듬해 아내와 결혼한 그는 50년 일본 규슈의 오이타현 벳푸에 주둔 중인 제24사단 19보병연대에 배치받았다.

그해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다는 소식에 19보병연대는 네 대의 낡은 상륙함을 타고 부산항에 도착했다. 대전까지 올라가 북한군과 교전했지만, 후퇴를 거듭했다. 장교들의 부상과 전사가 잇따르자 펀체스는 참전 30일 만에 중위로 진급했다. 부대원들을 이끌고 부산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했다.

“미 육군에서도 어린 장교였습니다. 군목에게 받은 성경책을 심장과 가까운 외투 안주머니에 넣어뒀어요. 매일 성경을 읽으면서 두려움을 극복하려 했습니다. 우리의 안전과 한국인들의 자유를 위해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후 38선을 넘어 북한 땅으로 진격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됐다. 11월 4일 펀체스는 평안남도 안주에서 교전하다 중공군이 쏜 기관총에 맞아 오른발에 총상을 입고 생포됐다. 수용소 생활은 지옥이었다. 9㎡ 남짓한 방에서 앞사람 어깨에 머리를 대고 잠을 자야 했다. 고름이 흐르는 상처와 썩어가는 살에서 악취가 진동했지만, 얼어 죽지 않으려면 동료의 체온에 의지해야 했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의 굶주림도 고통스러웠다.

그럴 때면 펀체스는 왼쪽 양말에 숨겨서 들여온 포켓성경과 만년필을 꺼내 시편 23편을 읊었다. “‘고난이 닥칠 때면 시편 23편을 읽으라’고 가르쳐주신 어머니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수용소에선 기독교 탄압이 심해 기도와 찬양도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 말씀은 나와 동료들에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만년필로 성경책에 깨알같이 적어놓은 동료 전사자 명단. 윌리엄 펀체스 제공

포로생활이 길어지면서 전우들이 추위와 굶주림, 폐렴으로 죽어갔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시체는 피와 배설물, 눈 범벅이었다. 그렇게 눈밭에 방치된 시쳇더미가 30~40m 이어졌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담요 몇 장과 약간의 음식만 있었어도 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진 않았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며 더욱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펀체스는 숨진 전우들의 명단을 작성해 숨길 방법을 고민했다. 성경책에 전우의 이름 철자에 해당하는 글자 아래에 핀으로 작은 구멍을 뚫어 기억했다. 여백에는 전우 이름과 죽은 날짜를 기록한 뒤 성경책을 찢어 만년필 속에 돌돌 말아 숨겼다.

감시병에게 성경책을 압수당한 적도 있지만, 감시가 소홀한 틈에 몰래 압수물품 더미로 가서 되찾아왔다. 수천㎞ 떨어진 곳까지 와서 죽은 동료들을 기억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했기에 성경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휴전협정 체결 후인 1953년 9월 6일 펀체스는 포로 교환을 통해 귀환했다. 1038일 만의 자유였다. 그는 “고국에 돌아와 동료들의 이름이 적힌 성경책을 들고 아내와 함께 드린 첫 예배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70년의 세월만큼이나 닳고 해어진 성경책을 그는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젊은 시절을 한반도에서 보낸 것에 대해 어떠한 원망도, 후회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켜낸 대한민국을 지금도 아주 많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남북을 위해 기도하는 제 입술의 고백에 하나님께서 한반도의 평화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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