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박혜진의 읽는 사이] 사람을 감싸는 초록의 힘을 믿는다

오늘도 초록 / 한은형 지음, 세미콜론, 196쪽, 1만1200원

‘오늘도 초록’을 발표한 소설가 한은형은 저 사진에 담긴 채소들처럼 초록빛을 띠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초록주의자”다. 그는 양파 가지 버섯처럼 “표피의 색이 초록이 아니더라도 초록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들을 사랑한다고 적어놓았다. 픽사베이

지난주 박혜진 평론가가 소개한 책은 제목과 부제 모두 가히 충격적이다. 제목은 ‘2050 거주불능 지구’, 부제는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인데 이게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거나 SF 그래픽 노블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기후변화는 엄연한 현실이다. 기후변화라는 용어는 충분치 않다. 기후위기 혹은 기후재난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글을 쓰는 오늘(지난 22일)은 62년 만에 6월 최고 기온을 기록한 날이었고, 더위는 밤이 깊은 이 시간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금 이마에 맺힌 땀은 책이 밝히는 기후변화의 현실적인 재앙―해수면이 상승하고 수천만명의 난민이 발생하며, 셀 수 없는 숫자의 동식물과 사람이 죽는, 그리하여 결국 오늘날 기준에서 살 만한 지역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된 (파멸한) 지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보다(어리석은 인간 대부분이 그렇듯이) 지금 당장에 닥친 열대야 탓이라 말할 수 있다. 결국 에어컨을 켜서 땀을 날려 보낸다. 그리고 다시 책을 펼치는 것이다. 빠르게 퍼지는 산뜻한 온도에 몸을 맡긴 채 파멸을 선택한 인류의 무차별한 무책임에 혀를 끌끌 찬다. 이윽고 에어컨의 절전 기능을 켠다. 탄소 배출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아니고 관리비가 많이 나올까 봐 두려운 마음에.


이어서 읽을 책으로 소설가 한은형의 에세이 ‘오늘도 초록’을 선택한 것은 약간의 오해 때문이었음을 밝혀 두어야겠다. 본격적인 독서가 시작되기도 전에 ‘비건’ 음식에 대한 책이리라 불쑥 짐작한 것이다. 제목은 ‘오늘도 초록’이고 부제는 ‘그리너리 푸드’니까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닐 테지만, 결론적으로 이 책은 비건 음식에 대한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포괄적이고 유연하다. 이 책은 초록에 대한 책이다. 인간의 음식을 감싸 안는, 그리하여 결국 사람을 감싸는 초록의 힘을 믿는 책이다. 그 믿음을 자연스레 전파하는 책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채식주의자’가 아닌 ‘초록주의자’ 혹은 ‘친록파’라 칭한다. 갖가지 샐러드로 가볍게 포문을 열어 ‘아스파라거스’와 ‘아보카도’처럼 최근에 각광받는 채소를 지나 ‘돌마데스’와 ‘시소잎 김밥’ 같은 생소한 음식을 소개하고, 쪽파와 당근과 아티초크와 민트에 이르기까지 기어코 초록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것들은 음식의 부재료가 아닌 주재료가 되어, 장어든 소고기든 타르타르스테이크든 과메기든 그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초록으로 감싼다. 저자가 초록이라 부르는 것들, 그러니까 “땅에 씨앗을 뿌려 자라나는 식물들”에는 그런 힘이 있다는 걸 이 책을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2050 거주불능 지구’에 ‘오늘도 초록’을 이어 읽는 게 자연스러우리라 여긴 것은 격한 대조를 이루는 제목과 관련된 작은 오해 때문이었지만, 도착지는 같았다. 기후위기를 심각한 일로 여기고 행동하는 자와, 비건 혹은 비건 지향으로서 식단을 제어하는 이들더러 어떤 사람들은 쉽게 유별나다 평가 내린다. 그중 누군가는 기후위기는 거짓말이라고 하고, 채식주의는 위선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편견이야말로 오해에 불과하다. ‘기후위기’는 유별난 이들에게만 닥치는 게 아닌, 모두의 존재를 위협하는, 도리어 민주주의적인 이슈다. ‘그리너리 푸드’는 환경과 건강을 위한 특별한 식단이 아닌 그저 맛있는 식도락을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짧게 말해 둘은 각각 모두의 위기이자 모두의 즐거움인 것이다. 마치 자연처럼.

육류용 소를 위한 비료를 줄이면 기아 인구의 상당수가 배고픔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당장 내일 저녁 반찬에 고기를 없애면, 기아가 사라지고 탄소배출량이 줄어들며,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 천만에, 그럴 일은 없다. 다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최선을 다해 사랑을 하고 최선을 다해 맛있는 걸 찾고 최선을 다해 성과를 내려 하듯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리의 삶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초록’을 읽고서도 이 초록 행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는 어쩔 수 없는 냉혈한이겠지만, 놀랍게도 기후위기의 재난은 냉정한 악한과 따스한 이웃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다가온다. 이 암울한 마음을 달랠 싱그러운 세상이, 이 책에는 있다. 아직은 우리 이렇게 살아서 다행이라는 듯이, 앞으로도 우리 이렇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듯.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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