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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국뽕이 끝나면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6·25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한 에티오피아의 노병들을 만난 건 2016년 아프리카 출장에서였다. 서울 명성교회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세운 굿뉴스 명성교회가 6월 즈음해 마련한 ‘한국전 참전용사 위로의 밤’에 초대받았기 때문이었다. 인상 깊었던 건 몇몇 용사들의 꼿꼿하고 품위 있는 태도였다. 황제 근위대 장교였다가 한국에 파병됐다던 일마 벨라추씨가 특히 그랬다. 훈장을 단 군복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면서도 행사 내내 흐트러짐 하나 없이 자리를 지켰다.

출장을 통해 알게 된 에티오피아는 3000년이 넘는 역사와 세계 두 번째로 오래된 고유 문자를 가진 문화의 나라이자, 19~20세기 서구 열강의 침략 속에서 독립을 지켜낸 긍지 있는 나라였다.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우리보다 잘살았던 나라이기도 했다. 1974년 쿠데타 이후 독재와 부정부패, 가뭄과 기아, 내전으로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아래로 내려앉았지만 말이다.

세월에 따라 국가가 부침을 겪는 일이야 역사에서 익히 봐왔지만,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며칠 출장 동안 속성으로 보고 배우는 기분은 묘했다. 1인당 국민소득 30배라는 격차가 대표하듯 한국과 에티오피아의 명운이 반세기 만에 이렇게나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그때 에티오피아에서 느꼈던 것처럼 코로나19를 겪으며 몇 개월 새 우리나라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한국식 방역의 성과가 알려지면서 ‘우리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인가’라는 주제로 지상파 TV에서 심야토론을 했을 정도다. BTS와 류현진 손흥민 선수, 봉준호 감독이 닦아놓은 구름판을 딛고 이른바 K방역으로 도움닫기를 한 모양새다. 며칠 전엔 우리의 양껏 높아진 콧대를 새삼 확인한 설문 결과도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한국전쟁 70년, 대한민국을 만든 이슈 대국민 인식’에 따르면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84%가 ‘그렇다’고 답했다. 선진국이라고 느낀 계기로는 K방역이 36%로 첫손에 꼽혔다.

반면 미국에선 ‘자신이 기억하는 미국 역사 중 지금이 최저점’이라고 답한 미국인의 비율이 72%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심리학회가 성인 3013명을 상대로 한 ‘스트레스 인 아메리카 2020’라는 설문으로, 응답자의 83%는 미국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심각한 스트레스의 원인이라고 답했다. 매년 실시되는 조사의 보고서 원문을 찾아봤더니, 이 수치는 학회가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라고 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설문 결과의 원인으로 코로나19와 경기 침체, 인종 문제 세 가지를 꼽았다.

우월감을 갖자는 얘기가 아니다. 지옥 같은 한국이라며 ‘헬조선’이라 부르던 게 얼마 전 일이다. 국가와 히로뽕을 합친 ‘국뽕’도 애초에는 애국적 자긍심에 과도하게 도취된 걸 비꼬는 말이었다. 그런데 넘치는 자부심 때문인지 요즘 들어서는 국뽕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뉘앙스까지 탈색된 듯하다. 헬조선에서 국뽕으로, 곤두박질했다 치솟아 오르는 롤러코스터에 탄 것처럼 어질어질하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지난 22일 “코로나19 2차 유행이 진행 중”이라며 폭발적인 대유행과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만에 하나 우려가 현실이 되면 국뽕이 얼마나 부끄러워질까. 거기다 남북 관계도 경제 문제도 녹록지 않아 보이니, 금세 다시 헬조선을 외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왕 시작된 국뽕이라면 정부도 국민도 최선을 다해 오래도록 끝나지 않게 지킬 수 있기를.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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