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분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다.’ 8살, 10살 형제를 키우는 지인의 올해 소망이다. 프리랜서인 그는 집에서 일한다. 모두 잠든 밤이 돼야 겨우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남편의 재택근무가 끝난 지 한 달 정도 지났고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학교에 가지만, 두 아이가 서로 다른 요일에 등교하면서 작은 바람은 여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다. 별일 없이 평범했던 날들, 그래서 조금 덜 정신 사나웠던 일상을 그는 지금 몹시도 갈망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많은 이들의 일상을 뒤흔들어 놨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무렵, 나는 보도자료 이메일이 그렇게 반가웠다. 보도자료 자체가 뜸했을뿐더러 무급휴직 사례도 차츰 나오던 때였다. 이메일을 열어보는 게 그의 무사함을 확인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는 홍보 담당자가 여전히 그 회사에서 자기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니 어쩐지 안심이 됐다. 누군가가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잘 지내시죠? 다행입니다. 이런 밋밋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안도했다.

코로나19로 바뀐 세상을 볼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켜내고, 버텨내고, 이어가는 일상에 마음이 간다. 제각각 다른 모습이지만 저마다의 속도로 일상을 굴려 가는 이웃들을 문득문득 돌아보게 된다. 전에 없던 측은지심이 불쑥 튀어나온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갈라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어쩌면 이미 어느 한 부분은 깨져버린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조금은 너그러워진다.

무탈한 일상을 간절히 바랄 수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아팠던 엄마와 함께하며 알게 됐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프면 무료하고 시시하지만 무사했던 일상이 ‘일시 정지’된다. 평범한 하루가 위기와 극복의 격렬한 소용돌이의 현장으로 돌변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재밌고, 웃기고, 지금 생각해도 몹시 행복하고 충만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쁜 일이라는 게 하나의 표정만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갔다. ‘나쁜 일’은 변화무쌍한 표정으로 나쁜 일을 겪고 있는 자들을 롤러코스터에 태운다. 나쁜 일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으면 다양한 감정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하나를 잃으면 다른 걸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이 순간으로 끝이 아니라는 걸 절감하게 된다. 아무 일도 없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코로나19 대유행의 날들을 지나는 가운데 ‘뉴노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감염병이 일상화된 삶, 많은 사람과 부대끼기보다는 적절히 거리 두며 살아가는 세상을 막연하게 그려본다. 이미 뉴노멀은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누구도 명쾌하게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뉴노멀이 단 하나의 표정을 가진 존재는 아닐 것이라는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겠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는 믿음이 강렬하게 뿌리박혀서 그런 듯하다. 단단히 버텨내기만 해도 생각보다 근사한 뉴노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신앙처럼 찾아든다. 쳐들어온다는 느낌으로.

그러니까 이 글은 어쭙잖은 위로의 한마디다. 글을 쓴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구차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조금 구차해 볼까 한다. 코로나19가 뒤흔든 일상을 어찌 됐든 그럭저럭 혹은 갖은 노력을 다하며 버텨내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소소하면서도 심심한 위로다. 모두에게 무료한 일상이 다시 찾아들기를 바란다. 그리고 천둥벌거숭이 형제를 둔 지인에게도 하루 20분의 자유가 되살아나기를.

문수정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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