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청년 수난 시대다. 조국 가족의 ‘아빠 찬스’에 좌절했고 ‘인국공 사태’를 보며 펜을 꺾었다. 코로나19발 고용 한파에 억눌리고 소액주주 양도세 도입에 말문이 막혔다. ‘억억대며’ 오른 집값은 딴 나라 이야기다. 희망 운운하기도 민망할 터. 일할 맛 안 나는 더러운 세상! 사다리를 걷어찬 것은 코로나가 아니다. 청년에 대한 무지와 무시로 일관한 정부 여당이다. 더럭 겁이 난다. 청년세대의 울분과 좌절이 기성세대로 향하진 않을지. 복수를 감행해 출산율을 또 한 번 반 토막 내진 않을지. 앞선 자는 연금을 걱정하고 불안을 넘어 공포를 느끼진 않을지.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비정규직 1902명의 정규직 전환 선언은 결국 정부 여당과 청년 간의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상대는 ‘부러진펜운동’ 해시태그를 달았던 취준생뿐이 아니다. 인국공 정규직 노조도 비정규직 노조도 싸움의 대상이다. 칼을 쥔 쪽은 팩트체크에 여념이 없다. 보안검색원은 취준생들이 준비하는 ‘일반직’이 아니고 일반직 채용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기에 청년 채용기회 박탈은 사실이 아니란 거다. 싸움이 격해진 건 우리 탓이 아니라, ‘가짜뉴스’ 때문이란 주장이다.

가짜뉴스 범람이 원인이기에 이번 사태는 ‘사소한 일’(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이고 불공정이 아니다. ‘조금 더 배워 임금 2배 더 받는 게 불공정’(김두관 민주당 의원)이다. 이 사소한 일에 왜 국민 25만명이 반대 청원을 했을까. 혹시 스펙 전쟁에서 피땀 흘려가며 ‘노오력’한 청년들을 물 먹이려는 의도는 아닐까. 17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가 예상되는 인국공이 무리하게 비정규직 채용을 추진한 이유는 뭘까. 공기업 경영평가를 의식해서였을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대통령의 신념을 신성화한 결과는 아닐까.

지금의 2030은 생존주의적 마음가짐으로 무장한 세대다. 창의적이고 위험 감수를 꺼리지 않지만 스펙 쌓기에 영혼을 팔고 젊음을 자기 계발과 등치 시킨 세대다. 입시를 위한, 취업을 위한, 주택 구입을 위한 유일한 길이 ‘조금 더 배우는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내면화한 세대다. 이들이 체화한 공정성은 대통령의 공정성과 결이 다르다. 사람의 경험과 역량이란 모름지기 노력이 모여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조금 더 배워야 할 이유다. 사회적 불평등 개선과 보정을 통해 ‘결과의 공정성’을 추구하려는 통치자의 시각과 대비된다.

청년들은 필요한 균형감도 갖췄다. 스펙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불공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조국 전 장관 딸이 누린 아빠 찬스를 보며 ‘스카이캐슬’을 떠올렸다. 단호하게 불공정 보정을 외치고 광화문 집회에 참여했다. 경제 자본과 사회자본이 부모 찬스, 아빠 찬스가 되고 공정성이 흔들리는 현실에 분개했다. 정답인진 몰라도 정시 확대에 찬성했다. 과정을 공정하게 만들자는 거다. 내친김에 비정규직도 정규직화하면 어떨까. 공정한 결과를 만들면 되지 않나. 천만에. 노력이 배신하는 나라를 만들지 맙시다! 그럴 거면 왜 따져 뽑는 건가요.

청년들은 팩트체크하자고 덤비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정부의 무지와 무시를 질타하자는 것도 아니다. 무시당한 날이 어디 하루 이틀이랴. 공정성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는 거다. ‘노오력’하면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희망에 대해 말하는 거다. 사다리는 꼭 지켜달라는 외침이다. 투명한 공개채용을 요구하고, 소액주주 양도세 부과에 대해 ‘개미 죽이기’라며 반발하는 배경이다. 비트코인 사태 당시 걷어차였을지언정, 동학개미들이 땀 흘려 세워놓은 사다리는 제발 건들지 말라는 경고가 이래서 나온다. 내 집은 언감생심, 주식은 세금폭탄, 꿈의 직장 인국공의 배신. 수난 시대를 겪는 청년의 비통한 마음가짐이다.

더는 청년의 수난을 방치할 수 없다. 불과 다섯 달 전 7.3%에 그쳤던 20대의 실업률은 10.3%로 치솟았다. 42만명 실업자에, 나은 일자리를 찾고 있는 16만명, 일하길 원하나 구직을 중단한 69만명을 합치면, 127만명 이상의 20대 청년이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청년 눈높이에서 공정성의 원리를 재확립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해도 늦지 않다. 제3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청년 10만 일자리 양성도 차질없이 진행돼야 한다. 청년의 정치참여 확대는 필요조건이다. 이렇게 청년들을 사회의 중심으로 끌어오자. 청년이 건재할 때 나라가 바로 선다. 우리가 모두 사는 길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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