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 성착취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n번방 사건’은 그동안 성매매에 연루된 아동·청소년을 피의자로 규정하던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을 개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부분 자의가 아닌 폭력과 착취의 결과물이었던 아동·청소년 성매매의 현실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서 우리 사회는 이제 그들을 피해자로 보기 시작했다.

홀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맞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 집을 싫어했던 A양(17)은 채팅에서 만난 남성 B씨에게 위로를 받았다. 어머니와 싸워 울고 있던 A양에게 B씨는 전화로 노래를 불러주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여줬고, 기댈 곳 없던 A양은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사진을 보고 싶다는 B씨의 요구에 얼굴이 나오지 않은 사진을 보냈지만 이후 B씨는 만나자고 졸랐다. B씨는 A양을 만난 날 성폭행했고, 사진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했다. A양이 만남을 거부하자 B씨는 “3개월간 주인-노예 관계를 해주면 사진을 지우겠다”고 했고, 결국 A양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다 B씨가 “여자 혼자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엄마는 네가 사라지길 바랄 거다”라고 하자 A양은 집을 나와 B씨 집에서 지냈다.

A양은 그곳에서 또래인 C양을 만났다. B씨 사촌동생이라고 했는데 그들은 C양이 벌어오는 돈으로 월세를 내고 밥도 먹었다. 어느 날 A양과 단둘이 있을 때 C양은 “나는 사촌동생이 아니다”며 성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B씨는 C양을 내쫓고 A양에게 “이제 네가 월세와 밥값을 벌어오라”며 성매매를 강요했다. B씨는 A양이 성매매로 돈을 벌면 수수료를 뗐고, 수시로 성폭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성매매를 나갔다가 A양은 성매수자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했다. 도망가려던 A양에게 성매수자는 “선불 10만원을 내놓으라”고 했고, A양은 줄 수 없다며 버텼다. A양의 호출에 B씨가 달려와 성매수자와 싸움이 붙었다. 경찰 조사를 받은 뒤 A양과 B씨는 성매매 사기단이, 성매수자는 사기 피해자가 됐다. “너는 미성년자이니 보호처분밖에 안 나온다. 네가 덮어쓰라”는 B씨의 요구에 A양은 성매매를 강요당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사건 처리에 억울함을 느낀 A양은 이후 B씨를 성폭행으로 고소하고 재수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A양은 가정법원에서 보호 처분을 받았고 B씨에 의한 성폭행도 인정받지 못했다. 강요나 강제가 없었고 B씨가 사진을 유포하지도 않았다는 게 이유가 됐다.

그러던 중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A양과 함께 살던 C양이 다른 사건에 연루돼 조사받던 중 B씨의 성폭행 및 성착취 사실을 밝힌 것이다. 담당 수사관은 A양에게 참고인 진술을 부탁했고, 이 진술을 토대로 4명의 피해자를 더 찾았다. A양까지 5명의 사건이 병합됐고 결국 B씨는 법정 구속됐다.

지난 4월 30일 아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두 달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성매매에 연루된 아동·청소년이 숨기지 않고 신고에 나설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이 성매매에 연루되지 않도록 사전 방지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김영선 최예슬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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