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가 지난달 24일 노숙인 자활 쉼터인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서대문사랑방 내 숙소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김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일자리가 끊기자 이곳에까지 내몰렸다. 윤성호 기자

어두컴컴한 공간, 네 개의 2층 침대. 오후 3시의 낮잠으로 고단한 몸의 피로를 풀고 있는 남성들 사이에서 김모(49)씨가 걸어 나왔다. 김씨는 한 달 전 노숙인 자활 쉼터인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서대문사랑방(김욱 원장)에 몸 누일 침대 하나를 얻은 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김씨는 경기도 남양주에 집을 뒀고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는 중산층 가장이었다. 그도 자신이 이곳에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세상을 뒤흔들어 놓기 전까지는 그랬다.

관계마저 무너뜨린 코로나19

지난달 24일 구세군서대문사랑방 자활인 숙소에서 만난 김씨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쓴 채였다. 함께 지내는 이들을 위해 주의하는 것이라며 이제는 적응돼 괜찮다고 김씨가 웃어 보였다. 취업 교육을 받을 때도 식사할 때도 마스크는 항상 착용하고 있다고 했다. 곁에 있던 다른 자활인도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가정이 있는 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마스크를 벗어 던지는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코로나19 이전에 김씨는 정규직은 아니었지만 일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닭 가공 공장에서도 일했고 건축 현장에서도 일했다. 어디서든 일을 시켜주겠다는 곳이 많았다. 아팠던 아내의 병원비도 재롱 많은 아들의 생활비도 벌어서 마련해낼 수 있었다. 김씨는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는 걸 당연하다고 여겨왔다”며 미련이 남은 듯 말했다.

그러던 김씨는 지난 3월 일자리가 끊겼다. 인력사무소에선 “코로나19 영향으로 지금 당장 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몇 개 안 되는 일자리는 사무소장과 사이좋은 이들이 차지했다. 신문 구인 광고를 찾아 연락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돈을 못 벌자 카드빚과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고 법원으로부터 경매 절차를 알리는 재산압류 통지서가 날아왔다.

장롱과 세탁기가 치워지는 걸 가족과 함께 지켜봐야 했다. 돈 몇 푼이라도 구하기 위해 물건들을 하나둘씩 처분한 것이다. 집에서도 나와야 했고 이내 가정이 해체됐다. 김씨는 단 두 달 만에 가족이라는 관계가 무너졌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는 “이자가 한 번 밀리기 시작하니 메꿀 수가 없었다”며 “하루 먹는 것과 하루 자는 게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되는 상황에까지 내몰렸다”고 털어놨다.

다만 김씨는 아픔을 이겨내려 하고 있다. 술과 담배를 끊었고 가족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도 강하다. 최근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 역시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쉼터 식구들과 마음속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으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받았다. 일요일 채플 모임 시간 함께 모여 노래할 때면 저절로 신이 난다고 했다. 노래 부를 일이 없었는데 일주일에 하루라도 노래 부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는 것이다.

의지가 생기자 일자리도 생겼다. 쉼터 소개로 코로나19 방역 업체인 클린씨(진무두 대표)에 3주 전 취업할 수 있었다. 교회나 다중이용시설을 방문해 손잡이 등 사람 손길이 많이 닿는 곳을 소독하고 방역 점검을 한다. 하루 3~4곳을 방역하다 보면 자신의 마음마저 아픔으로부터 방역된 느낌이라고 한다. 김씨는 “일을 마치고 쉼터에 돌아올 때 정말 기분이 좋다”며 “아픈 아내에게 보내줄 돈, 빚을 갚아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음에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코로나19보다 무서운 세상의 편견

세상 사람들은 종종 자활인이 코로나19 감염에 더 취약할 것이라며 불편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방역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루는 자활인이 서울 중랑구에서 쉼터까지 1시간30분을 걸어오는 일이 있었다. 마스크가 한창 부족했던 때 마스크를 잃어버려 버스를 못 타자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홀로 걸어왔다는 것이다. 마스크 선이 끊어져 손으로 마스크를 꼭 붙잡고 걸어온 이도 있었다.

김씨도 처음에는 사람들의 편견과 맞닥뜨려야 했다. 그가 방역을 위해 찾아왔다고 하자 몇몇 이들은 ‘노숙인 쉼터에서 온 사람이 어떻게 방역을 할 수 있느냐’며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김씨가 꼼꼼히 정성 들여 일하고 나서야 사람들의 시선은 조금씩 바뀌었다. 지금은 김씨에게만 방역을 맡긴다고 한다.

김씨를 고용한 진무두 클린씨 대표는 쪽방촌과 노숙인 시설 등에서 자활 인력을 스무명 고용하고 있다. 웬만한 사람보다 정직하게 일을 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자활인은 “제가 노숙을 몇 년째 했는데 그깟 벌레가 무섭다고 방역 일을 못 하겠습니까”라며 너스레를 떨 정도였다고 한다. 온종일 방진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일하는 이들을 볼 때면 오히려 진 대표가 미안해진다.

김수민 구세군서대문사랑방 사무국장도 김씨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일주일에 세 번은 전체 방역을 하고 방역을 위한 안전교육도 수시로 하는 쉼터 내 자활인이 세상 밖 사람보다 안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활인이라고 하면 감염에 취약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아직 노숙인 시설에서 코로나19 대형 전파가 이뤄진 적은 없다”며 “자활인이라고 해서 코로나19에 쉽게 감염됐을 것이라는 편견으로 바라보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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