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경찰인 마틴 할웨그 경위는 경찰후보생이던 1992년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학살) 생존자를 만났다. 나치 당원, 그리고 자신과 같은 경찰의 추적을 피해 베를린의 집 다락방에서 4년 동안 숨어지낸 사람이었다.

할웨그 경위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경찰을 피해 도망다니면서 느낀 두려움과 공포를 생생히 묘사했다”면서 “그런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 인간으로서, 그리고 경찰로서 스스로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경찰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단체 관람했다. 그는 “그 영화는 내가 한 경찰선서의 의미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미국에서 경찰 개혁 요구가 거센 가운데 ‘독일식 경찰 개혁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독일에선 경찰이 되려면 부끄러운 과거의 역사를 마주해야 한다”면서 “독일의 경험은 미국이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혁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미주리주 플로리산트에서 지난달 27일 열린 흑인차별 반대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플로리산트에서는 지난달 초 흑인 시민이 경찰 차에 치이는 사건도 발생해 경찰의 폭력성에 대해 공분이 일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초기 경찰 조직은 1704년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만들어진 노예 순찰대였다. 특히 남부 지역에선 백인 남성들이 흑인 노예들의 탈출 또는 봉기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자경단을 꾸리는 경우가 많았다.

인종차별을 위해 만들어졌던 미 경찰 조직은 여전히 암묵적으로 그 목적에 충실하고 있다. 미 국립법집행박물관 측은 “1865년에 노예 순찰대가 폐지됐다고 해서 그 영향력까지 폐지된 건 아니다”며 “남북전쟁 전의 ‘합법적인’ 노예 순찰이나 전쟁 후 ‘법의 영역 밖’에서 흑인들에게 사용된 경찰의 위협 전술은 유사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경찰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과와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인종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교육, 경찰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정확한 통계, 불필요한 무력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 등도 뒷받침돼야 한다.

뉴욕 존 제이 칼리지의 범죄학자 데이비드 케네디는 미 온라인 매체 복스(VOX)에 “노예제도나 짐 크로우법이 존재하던 시대에 자신이 살고 있었는지 여부는 상관없다”면서 “경찰은 ‘흑인에게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고 지나친 검문 등을 실시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고백해야 한다. 그 전까지 경찰과 흑인 집단의 불신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은 2차대전 후 사법체계를 비롯한 모든 곳에 역사로부터 얻은 교훈을 적용했다. 변화가 사람들의 행동과 사회 제도에 스며들게 하는 데는 수십년이 걸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노력은 독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큰 축이 됐다.

독일의 역사학자이자 경찰 전문가인 클라우스 바인하우어는 “전쟁이 끝난 뒤 우리는 상처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며 “독일은 부끄러운 역사를 끊어내야 했고, 경찰도 그랬다”고 설명했다.

나치 정권 하에서 경찰은 모든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게슈타포(나치 정권의 비밀국가경찰)는 정적을 제거하고, 유대인 거주 지역을 감시했다. 유대인을 추방하고 살인했다. 30여개의 경찰 대대가 동부전선(2차대전 당시 독일 동부와 옛 소련 사이의 전선)에서 수백만명을 죽이기도 했다.

이 같은 이유로 독일에선 인성과 지식에 대한 검증을 통과해 경찰후보생이 되면 최소 2년 반의 엄격한 교육과정 속에서 민주주의, 법, 윤리, 경찰 역사를 배워야 한다. 나치의 옛 유대인 수용소를 찾아가보고 생존자를 만나는 일 등이 경찰 후보생에겐 의무사항이다.

NYT는 “대부분의 미국 경찰 교육기관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입학할 수 있고, 높은 수준의 교육과정이라고 하더라도 입학 요건이나 과정의 심도 등에서 독일의 최소 기준에도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전후 독일은 경찰과 군인을 엄격히 분리했다. 경찰 권력이 비대해져 나치 정권에서처럼 군대화되거나 정치 도구로 사용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국내 정보 수집 기관인 헌법보호청은 조사, 체포 등의 집행 기능을 가지지 않는다. 대신 경찰은 정보 수집을 할 수 없다. 그리고 헌법보호청과 경찰은 정보를 교환할 수 없도록 했다. 바인하우어는 “지금 독일에 미국 연방수사국(FBI)같은 조직이 없는 건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총기 등 무력 사용에 대한 생각도 미국과 다르다. 마가레테 코퍼스 베를린주 검찰총장은 “독일에선 무력 사용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총을 뽑아드는 것 자체가 경찰 스스로에겐 심리 치료가 필요한 일일 수 있다. 많은 경찰들이 그 문제로 조직을 떠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총기 사용이 드물다는 건 경찰에 의한 사망도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독일에서 경찰의 총격에 의한 사망자는 11명, 부상자는 34명이었다. 미국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은 민간인 수를 집계하는 영국 가디언의 ‘더 카운티드’ 프로젝트에 따르면 인구가 독일의 4배 수준인 미국에서 지난해 경찰에 의한 사망자는 1098명으로 나타났다.

뉘른베르크 소재 독일 최대 시장조사 기관 GfK가 격년으로 실시하는 ‘가장 신뢰하는 직업’ 조사에서 경찰은 항상 상위권에 있다.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2018년 82%, 2016년 84%로 나타났다. 정치인(14%) 등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그럼에도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2017년 경찰을 향해 돌멩이와 유리병을 던지는 시위대에 경찰은 후추 스프레이와 곤봉으로 맞섰다. 그러자 경찰의 과도한 무력 사용을 비난하는 150여건의 고소장이 접수됐다. 신나치 단체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돼 정직 처분을 받은 경찰도 있다.

독일 사회에도 인종주의는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무슬림 이민자 수십만명이 건너온 2015년부터 독일에도 인종주의가 퍼지기 시작했다. 한 경찰 교육기관 관계자는 “독일 역사가 주는 교훈 중 하나는 경찰과 같은 집단이 변화하기 전에 사회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사회가 변하지 않는데 경찰만 변화할 순 없다. 경찰은 사회의 거울”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