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재를 위해 과거를 편리하게 이용한다. 때론 남용하고 오용·악용하기도 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나 ‘역사 청산’의 기치 아래 우리나라, 미국, 유럽 등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과거의 일이나 인물에 대한 역사 인식을 시대 변화에 맞게 고쳐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너무 편향되고 편협하게 비난한다면 자기변호를 할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비열한 횡포 혹은 무지한 만행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가 요즘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흑인 차별에 대한 항의가 전국에 확산되며 인종차별주의와 관련해 논란이 있었던 역사 인물의 동상이나 기념물이 철거되고 학교나 건물에서 그들의 이름이 삭제되고 있다. 남북전쟁 당시 남측 장군들은 물론이고 우드로 윌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링컨, 앤드루 잭슨 등 역대 대통령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흑인을 차별적으로 묘사한다며 철퇴를 맞았다. 인종차별에 대한 현재의 분노가 과거의 언제까지, 또 누구에게까지 퍼져나갈지 그 범위를 예상하기 힘들 정도다.

오죽하면 그럴까 일부 공감이 가지만 정당한 취지라 해도 도를 지나쳐선 곤란하다. 지금과는 사회적 규범과 문화적 가치가 상당히 달랐던 오랜 과거에 살았던 인물을 인종 문제의 측면만으로 평가한다면 종합적 균형감각을 잃고 편향성, 편협성에 휘둘릴 수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역사 맥락을 무시, 곡해하고 자의적으로 재단하기 쉽다. 예를 들어 윌슨 대통령을 인종차별적 발언의 몇몇 지엽적 에피소드를 이유로 프린스턴대학교의 단과대 이름에서 뺀다면 그가 정경유착 방지, 보스정치 타파, 시민의 민주적 정치참여, 정부의 합리적 운영, 여성 및 아동의 인권 신장, 약소민족의 자결권 보장 등 미국 혁신주의의 핵심 의제를 추진하고 성취한 공은 잊어도 된다는 말인가. 모든 평가를 흑인 인권 문제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다른 측면의 인권과 수많은 여타 가치는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역사에 대한 평가는 극히 신중해야 한다. 동시대에 대한 평가보다 더 그래야 한다. 과거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고, 종합적 평가를 균형 있게 할 만큼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 인물의 복잡한 배경, 다중적 심리, 미묘한 동기를 오늘날 우리로서는 잘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어설픈 선입견과 협소한 시각에 이끌리거나 광풍처럼 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집단주의적 분위기에 지배당할 수 있다. 자칫 결과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자기변호권도 없는 만만한 과거를 허수아비로 세워 비판하며 현재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책략으로 흘러가는 위험도 상존한다.

더욱이 일반 시민이 아니라 집권층이 역사 청산을 주도한다면 특히 경계해야 한다. 그 점은 미국보다 우리나라에 더 해당한다. 미국에서 사회적 소외계층이 역사 청산을 외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정권을 쥔 정치인, 정당, 관변 세력이 흘러간 역사 인물들을 반민족적이라고 앞장서 공격하고 있다. 친일파라는 해묵은 낙인을 남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토착왜구’라는 저속하고 야비한 표현까지 공공연히 쓰고 있다. 심지어 누구는 국립현충원에 자리를 줄 수 없다느니, 누구누구는 파묘해야 한다느니, 과거 인물에 대한 거친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다. 집권세력이 이처럼 과거 인물들에 대한 비난에 몰두한다면 미국의 역사 청산운동에 나타난 환원주의적 편협성, 맥락의 몰(沒)이해성, 비(非)형평성 등의 문제에 더해 왜곡된 책략적 정파성이라는 문제까지 추가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오래 억눌렸던 사회적 약자계층이 돌발적으로 역사 청산운동을 벌이게 된 것이므로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약자계층을 돕는다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집권 측이 다분히 계산적으로 과거의 부정적 측면만을 과장되게 부각하며 현재의 권력을 공고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사안의 심각함이 있다. 현재는 필연적으로 과거가 된다. 그때 편향된 청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과거를 오용·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대해 횡포를 부리다가 언젠가 자기 덫에 걸릴 수 있다. 과거에서 반성할 부분과 존중할 부분을 신중히 구분·성찰하되 현재와 미래에 우선순위를 두는 정정당당한 자세가 요구된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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