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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백희나와 조용필의 비슷한 송사

손수호 인덕대 교수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씨가 출판사 한솔수북과의 저작권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결정에는 더 이상의 심리가 필요하지 않다, 하급심에서 충분히 다뤄졌다는 뜻이 담겨 있다. 쟁점이 된 매절계약은 위험분담 측면이 있어 작가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라고 볼 수 없다고 정리된 것이다. 작가는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2004년 ‘구름빵’을 출간한 이후 오랜 시간 재판에 기댔으나 창작자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그의 주장은 배척됐다.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작가의 미약한 권리에 처참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동화책을 지은 여성 작가’라는 신분을 드러내며 “법이 약자들을 지켜줘야 하는데…”라고 밝히거나, 국제적 권위의 린드그렌상 수상과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송은 처음부터 어려운 게임이었다. 작가를 존중하는 것과 계약의 유효성을 다투는 것은 다른 것이다. 최근 저작권법 개정을 위해 논의 중인 ‘추가보상청구권’도 구름빵 사태에서 비롯된 것이로되 민사법의 바탕을 흔드는 것이기에 도입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바탕이라는 것은 근대를 지탱시켜온 사적 자치 혹은 계약자유 원칙이다. 개인 간 거래가 공정성을 잃지 않는 한 책임은 각자의 몫이라는 입장이다.

비슷한 사례가 조용필씨 송사다. 조씨는 1986년 한 레코드사와 음반계약을 하면서 ‘창밖의 여자’ ‘고추잠자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31곡에 대해 저작권 일부(복제+배포) 양도계약을 했다. 86년은 우리나라가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하기 전이라 저작권 의식이 희미할 때였다. 양측이 치열한 법리대결을 벌인 끝에 레코드사가 승소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법원은 저작권 양도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궁박, 경솔, 무경험으로 인한 불공정한 법률 행위가 있었는지, 그 계약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지,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인지를 놓고 들여다봤으나 문제가 없다고 봤다. 계약은 무효 혹은 취소 사유가 없으면 유효하다는 논리다. 조씨는 많이 억울해 했다.

그러나 2013년 반전이 일어난다. 일부 아티스트가 당시 31곡을 빼앗겼다고 폭로하고 나서자 네티즌들이 격하게 호응했다. 대법원 판결문이 공개돼도 “탈취한거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먹혀들었다. 압박이 계속되자 레코드사는 이듬해 2월 문제의 31곡에 대한 복제 및 배포권을 원저작자에게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여론이 법을 이긴 드문 케이스다. 이때 레코드사가 그냥 권리를 돌려줬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서류에는 계약 내용을 당분간 비밀에 부친다는 조항도 있었다. 권리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돈이 오갔다는 점, 계약을 존중하고 쌍방을 배려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처럼 곡절이 있기는 해도 합의에 의해 저작권을 찾아오는 것은 당당하고, 자연스럽다.

백씨와 한솔수북은 이 방식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작가는 시종일관 권리의 원상회복을 주창하고 있으나 지금 제도에서는 불가능하다. 대법원에서 확인해준 권리를 무조건 넘기라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한솔수북 역시 재판의 승자이긴 해도 상처 입은 권리를 마냥 붙들 필요가 없다. 한번 금이 간 신뢰를 회복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조용필식 접근은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작가와 출판사가 적절한 조건에 맞춰 저작권 양도계약을 다시 맺으면 끝난다. 이 과정에 린드그렌 상금을 사용하면 어떨까. 나는 상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재판장이 아니라 문화 소비자의 시선이다. 그중에서도 숫자는 많으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어린이를 생각하면 합의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재판이 아닌 계약에 의해 ‘구름빵’이 창작자의 품에 다시 안기고, 아이들이 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손수호 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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