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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이 세상’에 저항 말라


“다음 주일에 미군 폭격기가 안 오면 너희는 살고, 온다면 너희는 총살이다.”

1950년 7월 서울 충무로의 한 장로회 예배당. 서울은 인민군이 장악한 상태였다. 예배당 앞은 내무서였다. 그런데도 찬송가가 울려 퍼지자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내무서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이 예배당 문턱을 넘기 전 흰 저고리에 둥그런 안경테를 낀 40대 여인이 막아섰다. “이곳은 예배당입니다. 지금은 예배 시간입니다. 방해하면 벌 받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빈정거리며 “그런 중요한 예배 시간에 왜 미제 폭격기가 날아와 불바다를 만드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여인이 단호하게 “우리가 기도하면 못 오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한 실랑이 속에서도 한 여성도가 찬송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내무서원이 그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죽으면 천국이다.” 결국 쏘진 못했다.

예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옛날 여호수아의 기도는 태양도 머물게 했습니다.” 그 40대 여인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출옥 성도 최덕지(1901~1956) 목사였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 안수목사다. ‘최초’는 수식이 아니라 남성 교권 세대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깊다.

아무튼, 내무서원들은 예수쟁이들을 죽일 구실이 생겼다. 다시 주일이 됐다. 그들은 종일 눈물 콧물을 흘리며 예배를 올렸다. 폭격기는 이날 나타나지 않았다. 인민군들 사이에서 “하나님이 있는가 봐”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음 날 미군의 대규모 폭격이 감행됐다. 그들은 서울 시내 예배당에 불을 지르며 퇴각했다. 어쩐 일인지 그 교회는 일부만 탔다. 비그리스도인이 들으면 신화 같은 얘기다. 하지만 그 현장의 인물 하나하나가 기억을 살려 기록으로 남겼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중 수많은 기독교인이 이같이 보수적 신앙으로 ‘주님께 영광’을 불사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최덕지 안이숙 조수옥 등과 같은 출옥 성도의 믿음을 ‘에스더와 같다’며 집회에서 치켜세운다. “왜 그와 같은 믿음의 자세가 없냐”는 책망 가운데는 묘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살아남은 최덕지 등 21명이 평양형무소에서 출옥했다. 우상숭배 거부 성도였다. 일제 말 한국 교회는 비행기 헌납, 성육신 부인, 신도 의식 세례, 예배당 종 헌납, 주일 부역 성도 동원, 성전 축소, 만왕 왕설 부인, 시국 인식 순회강연 등으로 일제에 협조했다. 일본기독교단 조선지부에 속한 목회자들은 특혜를 받았다. 여기까진 인간적 심정으로 그럴 수 있지 싶다. 다윗을 들먹이며 피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친일 목회자들이 해방 후에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 이들을 제압하며 교권을 장악했다. 마치 친일파가 해방 후 득세한 경우와 같다. 최덕지만 해도 4번의 투옥과 7년의 옥살이를 했다. 그 출옥 성도 한상동 최상림 이현속 주남선 방계성 조수옥 등 대개가 한국 교계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신사참배 거부가 독립운동이라는 역사 인식도 끌어내지 않는 교계다. 도리어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조수옥 등의 공적을 거론했다.

한국 교회는 보수 신앙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현장 예배만을 고수하는 일, 동성애에 대한 단호함, 이단 척결 등이 보수 신앙의 본령인 줄 안다. 동성애와 이단의 많은 부분이 기성 교회의 내부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불순응하는 것을 보수로 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세상이 아닌 ‘이 세대’에 불순응하라고 가르쳤다. 부패의 상태에 있는 세대, 즉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간 종교적 순응자에 대한 불순응을 보수적 믿음으로 보았다. 기독교의 탄생이다.

예수는 하나님 지으신 세상에 순종했다. 출옥 성도도 그러했다. 그들은 피조물의 우상화에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최덕지의 기도는 우상과 싸움이었다. 보수 신앙을 내세워 세상에 저항 말라.

전정희 뉴콘텐츠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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