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역사여행] 붓 한 획이 말씀이요, 한 획이 진리 되다

‘천로역정’ 삽화가 김준근과 인천 동화마을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과 19세기 말 독일 주택 ‘세창양행’ 지점장 집터(사진 가운데). 지금은 천주교수녀회 소속 요양원·어린이집이다. 한글판 ‘천로역정’ 삽화를 그린 김준근의 풍속화가 세창양행을 통해 유럽으로 수출됐다.

서울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종점 인천역에 내리면 응봉산 자락 ‘동화마을’과 마주한다. 응봉산은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는 소위 자유공원이다. 동화마을 송월동은 1883년 인천항 개항 후 독일인을 중심으로 조선과 사업을 해보려던 외국인이 주로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구도심이 되어 활기를 잃었다. 이에 인천시는 2013년 무렵 마을 낡은 담과 축대벽에 ‘세계명작동화’ 그림과 조형물을 조성했다.

지난주 동화마을은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들,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로 붐볐다. 마을과 공원 경계쯤 송월교회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 아래쪽으로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섭리 어린이집·요양원’이 있다. 다닥다닥한 주변 주택과 달리 널찍한 부지다. 바로 이 부지가 한국근대사 공부를 할 때 배우는 ‘세창양행’이다. 1883년 독일 마이어상사가 설립한 조선 제물포지점이다.

독일 주택 동쪽 세창양행 직원 숙소. 양관으로 불렸다.

세창양행은 조선에서 채굴권 등을 확보하고 바늘 해열제 성냥 시계 등 박래품 교역을 한 회사다. 이때 조선 풍속화 등 미술품도 거래했다. 당시 이 ‘독일 주택’은 지점장 사택이었다. 좀 떨어진 응봉산 자락에 양관으로 불리던 직원 사택과 지사 건물도 있었다.

개항장 초량(부산)의 초량교회 베어드관과 근대 역사 골목. 김준근 활동지이다.

미술평론가들은 기산을 두고 “19세기의 김홍도”라고 말한다. 그는 제물포(인천)·원산·초량(부산) 등 개항장에서 풍속화를 그려 서양인에게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접한 최초의 서양인은 외교관 묄렌도르프(1847~1901)로 독일과 연관이 깊다. 세창양행 사주 마이어(1841~1926)가 소장한 기산 작품만 61점이다. 따라서 기산의 작품은 세창양행을 통해 독일 등 유럽으로 수출됐다. 미국과 일본 등을 포함하면 수출 작품만 1000여점이다.

‘천로역정’ 한글 번역자 게일(왼쪽)과 초판 목판본 표지. 삽화는 김준근이 그렸다.

그러한 기산이 1895년 조선 삼문출판사가 간행한 ‘텬로력뎡’(천로역정·존 버니언)의 삽화를 그렸다. 이 한글판 ‘천로역정’은 선교사 제임스 게일(1863~1937)과 그의 아내 해리엇 깁슨(1860~1908)이 번역했다. 게일 부부는 한국어 스승 이창직의 교열과 기산의 삽화로 최초의 한글 번역문학본을 낸 것이다.

기산이 개항장을 중심으로 삽화를 그린 것은 한국 기독교미술의 시작이기도 했다. 서양인들은 개항 이후 조선의 외교통상, 문화예술, 관광, 수출입 등을 이해하기 위해 탐색을 목적으로 방문했고, 기산의 풍속화를 사거나 주문 제작해 본국에 조선 이미지로 보여줬다.

반면 게일과 알렌, 스왈론, 데이비스 같은 선교사들은 그 목적이 달랐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도구로 하나님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그림을 필요로 했다. 1930년대 문자보급률 통계를 보면 문자를 아는 사람이 22%였다. 이를 고려한다면 1895년 일반 백성은 문맹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글자를 모르는 그들에게 예수를 알게 하는 방법으로 조선 사람 정서에 맞는 성화가 필요했다.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라는 서양 격언대로 그들은 따랐다.

게일은 ‘천로역정’ 초판본 서문에 함경남도 원산에서 번역했다고 밝혔다. 이 목판본 책에 기산이 그린 42컷의 삽화를 넣었다. 게일은 ‘사람이 어떻게 참도리를 믿는 것과 또 어떻게 예수를 아는 것과 또 어떻게 권력을 주시는 것과 또 어떻게 삼가 지키는 것을 소소히 나타내었으니 이것이 천로로 가는 데 첩경이라’며 믿는 데 유익이 되는 책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삽화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

신선영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은 “기산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그의 그림을 산 외국인의 기록 등을 통해서 그의 활동사항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19세기 말 서울 부산 등을 여행한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 루이 바라 등 적잖은 소장자들이 ‘원산의 화가’ 또는 ‘조선의 신사’가 그려준 그림이라고 했다.

김준근이 그린 삽화 속 인물 (‘천로역정’ 중에서 발췌·화가 사진·생몰은 미상)

‘천로역정’은 저자 자신이 어느 동굴에서 잠을 자다 꾼 꿈 이야기이다. 기산이 이를 완전히 이해하고 삽화로 그린 것이다. 삽화의 주인공 순례자, 즉 ‘긔독도’(그리스도인)는 구원을 향한 순례를 떠나 천국에 이른다. 한글을 몰라도 삽화만 보고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다. 고향 ‘멸망의 도시’를 떠나 미혹을 이겨내는 과정이다.

‘천로역정’ 내용 가운데 물에 빠진 그리스도인을 구조하는 동서양 삽화. 오른쪽 풍속화가 김준근 그림이다.

삽화는 전도받고 여행길에 오르는 두 장면, 좁은 문에 이르는 다섯 장면, 죄 짐 내려놓고 흰옷으로 갈아입는 다섯 장면, 갑옷 무장하는 일곱 장면, 영적 투쟁 네 장면, 환란을 극복하는 세 장면, 체화하는 네 장면, 절망과 죽음 극복 열 한 장면 등을 당대의 생활양식으로 표현했다. 남루한 옷의 긔독도가 네 번에 걸쳐 옷을 갈아입는 장면은 거듭남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 기산의 풍속화는 김홍도 신윤복과 비교해 구걸 장애 체벌 학대 고문 등 조선의 부정적 요소를 극대화했다. ‘천로역정 삽화’ 연구자 정성은은 이를 두고 “선교사들이 지옥과 악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조선 사람들의) 미신에 가득찬 생활방식이라는 것을 시각적 이미지로 재현(했기 때문이며)…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진리의 전파”와 무관치 않음을 설명했다.

‘생명의 말씀’을 전도받는 죄인. 김준근은 42컷의 연작을 그렸다. 그림만 봐도 예수를 알게 했다.

게일과 기산의 글·그림 책은 훗날 길선주 목사가 평양대부흥회를 끌어내는 데 영향력을 끼쳤다. 부흥사 이성봉은 천로역정부흥회 ‘장망성’을 열었다. ‘야소교가 조선에 준 은혜’ 등을 쓴 작가 이광수도 복음을 이해하는 고전으로 보고 읽었다.

아쉽게도 토착화된 예수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기산에 대한 기독교적 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가 가장 많이 활동했던 원산에 가면 최소 생몰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천·부산=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