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교사 3명이 지난 2일 서울 강동구 선사초등학교 빈 교실에서 원격수업에 쓸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교사들은 유명 풍속화 작품을 다양한 도구와 포즈로 재현했다. 김홍도의 씨름 원본과 이를 표현하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

김홍도의 풍속화 ‘씨름’을 교실 모니터에 띄워놓은 교사 3명이 능숙하게 각자 맡은 역할로 변신했다. 씨름꾼 역은 머리를 쓸어 모아 상투를 만들더니 골판지를 길게 오려 망건(상투 틀고 이마에 두르는 물건)이라며 이마에 둘렀다. 쪼그려 앉은 엿장수 역은 보자기를 둘둘 말아 플라스틱 바구니 양 모서리에 묶어 엿목판이라며 목에 두르고 일어섰다. 엿목판에 놓인 엿가락은 학생들이 배우는 단소였다.

엿장수가 거치대에 고정된 휴대전화의 동영상 버튼을 누르고 재빨리 자기 위치로 돌아가며 “10초만 버텨”라고 외치자 씨름꾼들이 상대 허리춤을 잡고 ‘끙끙’거리며 힘을 쓰기 시작했다. 이윽고 민망한 10초가 흐르고 누군가 컷 사인을 내자 웃음보가 터졌다. “우리만 재밌는 거 아냐? 애들도 재밌겠지?”

사투리가 가미된 등장인물 인터뷰가 이어졌다. 씨름꾼1은 “아랫마을 돌쇠에게 요만큼(손톱) 차이로 졌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여”, 씨름꾼2는 “개똥이가 나한테 도전장을 냈다며? 한주먹 거리도 안 될 것이여”, 엿장수는 “씨름 대회에 내기장이 거나하게 펼쳐지겠지. 밤새 만든 엿가락을 팔아볼 거야. 하하”라고 했다. 다른 촬영도 있으니 웃지 말자던 다짐은 소용없었다. 대사가 꼬이고 사투리가 어설플 때마다 셋이 배꼽을 잡았다.

지난 2일 찾은 서울 강동구 선사초등학교에서는 새내기 교사 셋이 빈 교실에 모여 원격수업에 쓸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세 교사 모두 다른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씨름꾼1 역할 김효진 교사는 이 학교 선생님이지만 엿장수 역할 정윤지 교사는 노원구 용동초, 씨름꾼2 역할 박지언 교사는 송파구 가주초 소속이다.

젊은 교사들이 모여 노닥거리는 듯하지만 사실 정교하게 설계된 수업이다. 교사들은 수업에서 학생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역량을 키워줘야 하는데 집에 있는 초등학생이 대상이어서 쉬운 미션이 아니다. 먼저 교사들이 교실 물건만으로 작품을 표현하는 영상을 만들어 보여준다. 등장인물 인터뷰를 통해 그림에 스토리를 입혀 흥미를 유발하고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학생들은 영상을 보고 집에서 따라 한다. 준비물 없이 주변 물건들로 그림을 표현해야 하므로 작품을 세밀하게 관찰하게 된다.

신윤복의 월야밀회 원본과 이를 표현하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

김홍도의 ‘씨름’에서는 씨름판 주변 인물들의 표정과 가지각색의 포즈에 그림 보는 재미를 느끼도록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교실 수업에서 작품에 대해 한층 풍성한 수업이 가능해진다. 이날 촬영에선 신윤복의 ‘월야밀회’, 김득신의 ‘야묘도추’까지 모두 세 작품이 다뤄졌다. ‘월야밀회’에선 연인을 훔쳐보는 여성이 인터뷰에서 “동네방네 다 소문낼 거야”라는 설정이었고, ‘야묘도추’의 병아리 물고 도망가는 고양이는 검은색 운동복에 흰 양말을 손에 낀 교사가 빵을 입에 물고 연기했다.

김득신의 야묘도추 원본과 이를 표현하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

이번 영상은 서양화편에 이은 2탄이다. 서양화편은 코로나19로 등교 못 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방에만 있는 제자들이 안쓰러워 집에서나마 재밌게 움직여보라고 기획했다. 영상 이름도 ‘방구석 미술관’으로 했다. 서양화편이 학생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 교사들로부터 호평을 얻어 수업 재료로 활용된다는 소식에 힘을 내 동양화편도 찍기로 했다.

‘방구석 미술관’ 말고도 이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아무교실’(아름답고 무모한 교육 실천기)에는 플라스틱 컵으로 하는 난타 공연인 ‘컵타’처럼 학생들이 집에서 따라 할 수 있는 영상들로 가득하다. 유튜브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시작했다. 컵타 영상을 전담하는 교사까지 포함하면 운영진은 4명이다. 서울교대 기숙사 301호에서 만난 사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채널 이름을 ‘301room’으로 했었다. 학생들 사이에선 지금도 301호 선생님들로 불린다.

‘아무교실과 함께하는 공공기관 견학’이란 영상도 시작했다. 코로나19 때문에 견학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신해 교사가 공공기관과 접촉해 궁금증을 풀어주는 개념이다. 현재 보건소편을 준비 중이다. 공공기관들의 문턱이 높아 장소 섭외에 진땀을 뺐다고 한다. 학생 질문을 취합해 한 차례 회의를 마친 상태다. 학생들은 보건소에 대해 코로나19에 걸리면 끌려가 2주간 격리되는 무서운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교사들은 저소득층과 어르신들을 위한 각종 건강 프로그램 등 보건소의 다양한 역할을 소개할 계획이다.

활동비는 전액 자비로 충당하고 있다. 짬짬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아이디어를 나누고 1주일에 한 번 퇴근 뒤에 선사초에 모여 촬영한다. 오후 8시30분에 학교 문을 닫기 때문에 촬영 가능 시간이 2시간 남짓으로 빠듯하다. 촬영 장비는 교사 개인 휴대전화와 거치대 말고는 없다. ‘맨땅에 헤딩’이지만 즐겁다고 한다.

교사들은 “가욋일이죠. 촬영하고 집에 가면 뻗습니다. 하지만 이 일 시작하기 전에 우리끼리 세운 원칙이 있어요. 우리 스스로 재미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오래 할 수 있고 아이들도 즐겁게 배울 수 있습니다”라며 “당분간 미술 감상처럼 우리가 학창 시절에 지루하게 여겼던 영역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언제까지 할지 우리도 모르지만 지금은 재미있습니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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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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