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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탕자의 비유(2)- 첫째 아들

누가복음 15장 11~24절


우리는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이 비유를 ‘탕자의 비유’로 칭하면서 늘 둘째 아들에게 집중한다. 하지만 사실 이 비유의 제목은 ‘두 탕자의 비유’라고 해야 더 적합하다. 왜냐하면 둘째만 탕자가 아니라 첫째도 탕자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집 밖의 탕자, 첫째는 집안의 탕자다.

왜 첫째가 탕자인가. 그는 아버지 말씀에 순종했다. 그리고 변함없이 아버지와 함께했다. 그러나 마음은 아버지와 함께하지 못했다. 그의 희생과 헌신은 자신의 기득권을 위한 근거로 작용했다.

이 비유의 대상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다.(3절) 이들을 대표하는 말은 ‘율법 전문가’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고 이를 전하는 자들이다. 비유에서는 아버지의 말을 순종하던 첫째 아들이다.

그렇기에 이 비유를 듣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마음이 불편해졌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집 나간 둘째 아들은 사랑하는데, 아버지 곁을 지키던 첫째 아들은 찬밥처럼 대우하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만일 그런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아버지를 오해하는 것이다. 이들을 향하신 아버지의 마음은 동일하다. 이 비유는 첫째 아들 역시 스스로가 탕자임을 깨닫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예수님의 안타까운 권고이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비유를 보면 큰아들의 화난 모습에 아버지가 반응하는 모습이 나온다. 둘째아들을 영접할 때 똑같이 달려 나와 큰아들에게 권한다.(28절) 이 ‘권한다’는 헬라어 단어는 ‘파라칼레오’다. 보혜사를 가리키는 단어와 뿌리가 같은 말로, ‘초청하다’ ‘위로하다’는 뜻이다. 아주 따뜻한 단어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회개한 둘째아들을 맞이했듯, 큰아들도 성령으로 그를 설득하고 위로하고 초청하고 있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

큰아들의 가장 큰 실수는 아버지를 오해한 것이다. 둘째만 사랑하고 자기는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큰아들이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자신은 둘째보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더 많다는 것이다. 첫째는 그동안 아버지로부터 외동아들 같은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식탁에서 밥 먹고 교제하고 비전을 나누고…. 이런 기억은 둘째아들에게는 없는 자신 만이 가진 특별한 사랑이다. 그런데 고작 잔치 하나로 아버지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어차피 둘째아들은 이미 자기 몫을 받았다. 이제 남아 있는 아버지의 재산은 다 자기 것이다. 아버지 역시 큰아들에게 “내 것이 다 네 것이다”(31절)라고 말한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임에도 아버지를 오해하고 동생을 향한 질투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 자신과 동생을 끊임없이 비교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모습, 내가 더 많이 수고하였기에 나는 당연히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모습, 이것은 회개한 둘째보다 훨씬 더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 이집트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서 일을 하자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나온다. 성경은 그 복의 이유를 ‘요셉 때문에’(because of Joseph)라고 말을 한다.(창 39:5) 그렇다. 첫째 아들의 성실함 때문에 둘째가 살았다. 첫째도 둘째 같이 방탕한 삶을 살았다면 아버지도 없고, 둘째 아들도 없다. 첫째 아들의 성실함 덕분에 그 가정이 복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가진 영예인 것이다. 만일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이 있다면 생각을 전환하자. 그 작은 사고의 전환이 가능하다면 큰아들 역시 기꺼이 기쁨으로 이 잔치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수용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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