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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비서들의 수난 시대

손병호 논설위원


과거 삼성그룹의 비서실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이학수 전 실장이 대변하듯 비서실장이 곧 삼성의 2인자였고, 비서실에서 오래 근무하면 대부분 계열사 사장으로 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6년까지 조선노동당 제1비서였다. 당을 위해 제일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란 의미에서 붙여진 타이틀이다. 민주국가에서도 통치자를 보좌하는 장관을 비서라는 뜻을 가진 세크리테리(Secretary)로 부른다.

그렇게 중요한 역할이 맡겨졌던 비서 직책은 회사 고위층이나 고위 관리를 보좌하는 전문 직종의 하나로도 자리잡게 됐다. 이화여대에서 1967년에 처음 생긴 이래 현재까지 20곳 정도의 대학에서 비서 관련 학과를 두고 있고, 국가기술 비서자격증도 있을 정도다. 해외에서도 비서학과는 인기가 많다.

비서는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을 보좌하는 존재이지만 일부 비뚤어진 인사를 만날 경우 괴롭힘을 당하기 쉬운 자리가 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일부 권력자들이 비서를 성적으로 괴롭힌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권력자의 최측근이어서 비밀 문서조차 함께 공유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 게 비서(秘書) 직책인데 일부 몰지각한 권력자는 그 비밀스러움을 본인의 욕구를 몰래 해소하고 추악함을 감춰주는 존재인 양 여기는 것 같아 개탄스럽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것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비서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성적 괴롭힘 이외에도 비서나 수행원을 을(乙)로 여겨 폭언·폭행하거나 시종인 양 함부로 다루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비서들이 성희롱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경우 혼자 묻어둘 게 아니라 당당히 피해를 호소하고 고발하는 문화도 확산시켜야 한다. 학교에서도 컴퓨터나 서류 작업 등만 가르칠 게 아니라 고위직과 자주 접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고위직이 부당한 요구를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지시켜야 할 것이다.

손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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