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테이프로 ‘성추행 박원순 더러워, 토나와’라고 쓴 글귀가 14일 서울시청 현관 앞 안내판에 나붙어 있다. 한 네티즌은 오전 5시27분쯤 커뮤니티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에 이 글귀를 직접 붙였다는 글을 올렸다. 연합뉴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의 성추문이 반복되면서 개인의 일탈뿐 아니라 지자체 행정에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 내에서 왕과 같은 권력자가 돼버린 지자체장에 대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거대 지자체장의 성적 일탈 배경에는 어느 순간 지자체장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돼버렸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지방자치제도가 25년 넘게 운영되면서 지자체장이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4일 “지방자치제도를 시행하면서 중앙에 대한 권력 견제를 맡은 지방기관이 오히려 ‘소왕국’이 되어버린 꼴”이라며 “각 지자체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면서 중앙권력을 견제할 수 있게 됐지만 역설적으로 지방권력을 감시할 주체는 사라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상당한 ‘팬덤’을 보유한 ‘스타 정치인’이 지자체장에 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있다. 피해자임을 밝히는 순간 수많은 지지자와의 싸움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유명 정치인은 여타 권력자와 달리 분명하고 맹목적인 지지층이 존재한다”며 “그 정치세력과 아우라를 생각하면 이들과 맞서 싸우며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당장 박 시장의 전직 비서 A씨는 고소 사실이 알려진 이후 박 시장 지지자로부터 엄청난 폭언과 모욕에 시달려야 했다. 한 네티즌은 “난중일기에서 ‘관노(관비)와 수차례 잠자리에 들었다’는 구절 때문에 이순신이 존경받지 말아야 할 인물이냐”는 글을 올렸다가 삭제하기도 했다. 결국 A씨는 온오프라인에서 2차 가해를 자행한 이들을 상대로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공간적으로도 집무실 안의 내실을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무실은 성추행 피해자들이 피해 장소로 공통적으로 꼽은 공간이다. A씨는 물론 오 전 시장에게 성추행을 입었다는 피해자 B씨와 안 전 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김지은씨 등은 모두 집무실에서 벌어진 성폭력 피해를 호소했다.

공공기관 사정을 잘 아는 한 법조계 인사는 “지자체장 집무실에 유행처럼 마련돼 있는 ‘내실’이 문제”라며 “직원들은 사무실 공간도 부족한데, 이런 공간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도 “안이 보이지 않는 집무실 형태는 한국만의 근대적 공관구조”라며 “스웨덴 같은 국가는 집무실 내부에 밀폐된 공간이 없고 기관장이 하는 업무를 밖에서 투명하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자체 권력자를 견제할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상헌 정치평론가는 “(이번 사건은) 거대 공공기관인 서울특별시청 내에도 이 문제를 바로잡아줄 기구나 조직이 부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성추행 피해를 당했을 때 기관 내 누구랑 상담해야 하는지, 객관적 사실 여부를 어디서 따져야 하는지 등 체계적인 시스템을 이제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는 지방자치가 왜 필요하느냐만 이야기했지 문제점에 대해 반성할 기회가 없었다”며 “중앙권력으로부터의 독립에만 초점을 맞췄던 논의에서 이제는 지방권력 견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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