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미래를 위한 예술과 기술의 협업 조건

[아트 & 테크] <1> 미술

지구촌을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증후군(코로나19)은 4차 산업혁명의 진행에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이로 인해 현대 사회의 수많은 영역에서 패러다임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술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이미 디지털·동시대 기술을 활용하고 있었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창작, 유통, 감상 등 모든 영역에서 스펙트럼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술은 기술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향하고 있으니까요. 예술과 기술의 융합에 대해 4회에 걸쳐 장르별 전문가 4인의 진단을 게재합니다.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현대미술로 연결한 전시 프로젝트 ‘CONNECT, BTS’에 참여한 작가 제이콥 스틴슨의 ‘카타르시스’와 토마스 사라세노의 ‘에어로센 파차’.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선보인 ‘카타르시스’는 실제 자연 생태를 스캔한 뒤 디지털 영상 이미지로 구현했다. 또 아르헨티나의 소금사막 살리나스 그란데스 상공에 띄워진 열기구 ‘에어로센 파차’는 예술, 과학기술, 환경운동이 협업한 결과물이다. ⓒHugo Glendinning·ⓒStudio Tomas Saraceno

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 사이에 장벽을 만들고 있다.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시대에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글로벌리즘을 포기하고 단절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협업과 연대를 강화해 새로운 생존 조건을 만들어 갈 것인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서로 다른 가치를 연결시켜 온 예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테크놀로지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시점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테크놀로지는 예술적 표현의 근간이었다. 15세기 오일 기반 색소를 실험한 얀 반 아이크가 새로운 유화물감의 시대를 열었고, 19세기 카메라의 발명은 예술가들이 세상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근본을 흔들었다. 20세기 산업의 가속화 속에서 앤디 워홀은 실크 스크린을,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차이궈 창은 화약을 예술의 소재로 끌어 들여 예술의 표현언어를 확장하였다.

그리고 21세기 기술환경은 데이터, 3D 프린팅, 가상현실, 인공지능(AI), 바이오, 블록체인 등 고도의 기술을 종합적으로 연결하는 시대를 열었다. 이제 테크놀로지는 예술의 표현 도구를 넘어서, 세상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생각의 틀로, 글로벌 협업을 가능케하는 신경망으로 작동한다. 그 결과 예술의 창작, 가치, 유통을 결정하는 수준까지 영향력을 확장한다.

반대로 예술은 인간이 포용적인 태도로 어떤 위치에서 세상을 관찰해야 하는지, 그리고 인간의 생각이 빅 데이터나 AI 알고리즘 등 테크놀로지의 합리성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반추하게 만든다. 디지털 초연결사회가 가져온 역설적인 외로움, 인간과 로봇의 공생, 인간과 미생물의 공생,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디자인, 지속 가능한 에너지, 해양 생태계 등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점들을 찾아내는 것이 예술가의 소명이 되어야 한다.

결국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은 인간 그리고 인간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어야 한다. 테크놀로지 자체가 아닌 그것을 이용해 무엇을, 어떻게 해석해서 새로운 의미와 경험을 만들어 낼 것인지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실제로 수많은 작업 가운데 기억되는 의미있는 사례는 인간을 둘러싼 다양한 가치가 협업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여성 작가 길리아 토마셀로의 작품 ‘꽃의 여신’은 바이오 아트와 페미니즘이 만난 흥미로운 사례다. 바이오 테크놀로지를 공부한 토마셀로는 터부시되어 온 박테리아와 인간의 공생 가능성을 제기한다. 특히 지금껏 억압받아온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워 여성의 성, 위생, 금기를 둘러싼 선입견을 허문다. 현대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항생제 남용은 다양한 부작용을 낳았는데, 토마셀로는 여성의 몸에서 가장 은밀하고 연약한 부분과 박테리아의 상관관계를 “부끄럽다”는 금기어 대신 새로운 가치를 발현하는 마이크로 생태계의 시작점으로 해석한다. 이 작품은 지난 2018년 유럽연합이 예술에 기반한 기술과 사회, 산업혁신에 부여하는 최고 권위의 스타츠상(STARTS prize)을 수상했다.

문화적, 자연적 유산에 대한 오마주를 3D 스캐닝 기법으로 실천하는 영국 아티스트 그룹 ‘스캔랩 프로젝트’는 지난 2016년 미국 요세미티 공원을 탐험하며 3D로 스캔했다. 그리고 1년 뒤 3D 증강현실로 요세미티의 지형을 재현하는 작업을 했다. 세계적 사진작가들의 영감의 원천이던 요세미티 공원의 절경을 2차원의 사진이 아닌 3차원인 입체 데이터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3차원의 정보가 2차원의 사진보다 더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작업은 정보의 과잉이 불확실성을 오히려 증대시키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던진다.

공감능력을 극대화시키는 1인칭 시점의 관람이 가상현실(VR) 테크놀로지의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5번의 오스카상을 수상한 알렉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VR 작품 ‘살과 모래(Flesh and Sand)’(2017)는 미국 국경을 넘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탈출을 실감나게 담았다. 감독은 관객들이 실제로 모래 위를 걷고, 수감소의 냉기를 온전히 느끼며, 국경수비대에게 잡히는 공포의 순간에 휩싸이도록 했다. 냉정한 테크놀로지가 따뜻한 내러티브와 만나서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보여준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본질은 뛰어난 VR 테크놀로지가 아닌 휴머니즘을 담은 스토리에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사운드 아트 역시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협업이 활발한 분야다. 하지만 단순히 물리적 차원을 넘어선 철학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올해 73세의 세계적 작곡가 빌 폰타나는 “모든 소리는 음악이다”라는 지론 아래 자연을 경청해서 사운드를 채집한다. 방탄소년단(BTS)이 협업해 지난 1월 14일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독일 베를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미국 뉴욕 그리고 한국 서울까지 전 세계 5개국 22명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석 달간 펼친 글로벌 프로젝트 ‘CONNECT, BTS’에서 그는 3000년 된 나무의 소리를 캡처해 베를린 마틴 그로피우스 미술관에서 재현했다. 3000년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몸짓이 만들어낸 소리가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 연결되는 울림을 들으며 관객들은 3000년의 시공간을 상상하게 된다.

디지털 인터넷 테크놀로지를 작품이 제작되는 방식은 물론이고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응용하는 시도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덴마크 출신 작가 제이콥 스틴슨이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와 손잡고 CONNECT, BTS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작품 ‘카타르시스’는 다양한 자연의 생태를 3D로 구현한 뒤 가상의 공간에 새롭게 구성한 풍경을 실제 채집한 사운드와 함께 구현했다. 그리고 인터넷망을 통해 전세계 누구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실제 현장의 물리적 구성보다 온라인을 통한 확산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돋보인다.

지속가능한 아트&테크놀로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지역 커뮤니티의 공감과 지지를 받아야 한다. CONNECT, BT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토마스 사라세노의 거대한 열기구 ‘에어로센 파차’가 지난 1월 28일 남미의 소금사막인 살리나스 그란데스 상공에 띄워졌다.

사라세노의 프로젝트는 늘 예술, 과학기술 그리고 환경운동의 교차점에서 지역민들과 항상 함께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번에 화석 연료, 태양 전지판, 배터리 그리고 열기구에 사용되는 헬륨조차 없이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하늘의 태양광으로만 열기구가 날아오를 수 있도록 과학자들과 협업했다. 동시에 환경 문제의 실질적 희생자인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살리나스 그란데스는 리튬이 무차별적으로 채굴되고 식수가 오염되는 등 다양한 환경 이슈를 가진 곳이다. 이곳에서 쏘아 올릴 작품에 잉카 제국의 우주관에 등장하는 시간과 공간 개념인 ‘파차(Pacha)’를 넣은 것은 환경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경험과 공감이 중요해진 기술환경 속에서 테크놀로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다만 혼자가 아닌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그 결과물을 경험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올바른 아트&테크놀로지 협업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최대 미술관 CCK에 모인 1800여명의 관객을 맞이한 뒤 사라세노가 한 첫 행동도 ‘에어로센 파차’를 만든 과학자 등 조력자들을 무대 앞으로 초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결국 아트&테크놀로지의 본질은 인간, 인간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테크놀로지 그 자체가 아닌 그것을 이용해 무엇을, 어떻게 해석해서 새로운 의미와 경험을 만들어 낼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세상을 감동시킬 의미 있는 협업은 기술과 기술의 물리적인 결합이 아닌 기술과 인간을 둘러싼 다양한 가치가 만났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 이대형 큐레이터는
이대형은 국제 미술교류 및 협업으로 잘 알려진 큐레이터다. 2013~2019년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로 활동했으며,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그리고 올해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현대미술 프로젝트인 ‘CONNECT, BTS’를 총괄 기획했다.

이대형 Hzon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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