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동서남북으로 14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지리적으로 영토 분쟁이 빈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사적으로도 청나라 때 최대 제국을 이룬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100년간 서구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만신창이가 됐다. 그랬던 중국이 강대국이 되면서 “고토 회복”을 외치며 영토 욕심을 노골화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90%가 자국 영토라며 굳히기에 들어갔다. 또 미국과 일본이 버티는 태평양 출구도 노리고 있고, 히말라야에선 인도와 싸우고 있다. 중국의 영토 갈등으로 아시아 전체가 들썩인다.

중국 점거 남중국해는 화약고

베트남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중국과 앙숙이다. 역사를 보면 그럴 만하다. 베트남은 1000년 넘게 중국의 지배를 받다가 938년 독립을 이뤄냈다. 그 후에도 끊임없이 중국 왕조의 침공을 받았다. 베트남은 1979년에도 중국군과 맞붙었으나 물리쳤다.

베트남은 남중국해에서도 중국과 충돌해 왔다. 1974년 1월 남중국해 파라셀제도(시사군도)에서 중국 해군과 맞붙었으나 패했다. 1988년 3월에는 스프래틀리제도(난사군도)에서 중국군과 싸워 해군 70여명이 숨지는 패배를 당했다.

최근에도 남중국해에서 베트남 어선이 중국 해상감시선에 부딪혀 침몰하는 등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의 영토 전쟁은 2000년 넘게 이어지는 셈이다.

중국은 1953년 반포한 지도에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9개의 점을 연결한 U자 형태의 ‘남해 구단선(nine-dash line)’을 표시해 자국의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단선은 남중국해 전체 해역의 90%가량을 포함한다. 중국은 필리핀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스카보러 암초를 2012년 강제로 점거하기도 하는 등 주변국을 힘으로 누르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곳곳의 암초를 인공섬으로 만들어 활주로 건설과 미사일, 레이더 시설 설치 등으로 군사기지화해 영유권 굳히기에 들어갔다. 중국은 인공섬에 최신예 전투기와 대형 폭격기도 추가 배치할 계획이다.

중국은 천연자원의 보고인 남중국해가 해상 에너지 수송로이자 대미 방위선인 ‘제1열도선’이라는 전략적 가치 때문에 한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역시 인도양-말라카해협-태평양으로 이어지는 길목인 남중국해를 중국이 장악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남중국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다.

티베트 ‘완충지대’ 사라져 인도와 충돌

중국은 인도와도 극한 충돌을 빚고 있다. 인도 북부 라다크 국경 지역인 갈완계곡에서는 지난달 15일 양국 군이 충돌해 인도군 20명 등 수십명이 사망했다. 앞서 지난 5월 5일과 9일에도 라다크 판공초 호수와 시킴 지역에서 양국 군대가 각각 충돌해 부상자가 속출했다. 양국 군은 2017년 부탄 국경지역 도클람(둥랑)에서 73일간 대치하기도 했다.

인도 군인들이 중국-인도 국경 지역인 라다크에서 지난달 발생한 중국군과의 충돌 과정에서 숨진 병사의 시신을 공항에서 옮기고 있다. 당시 충돌로 인도군 20여명이 숨졌고, 인도에서 반중 여론이 격화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인도와 중국의 잦은 충돌은 ‘완충지대’ 티베트가 무너진 탓도 있다. 티베트는 토번제국 시기엔 당나라를 위협할 정도로 강력했다. 토번은 그러나 건륭제 때인 1750년 청나라 영토에 편입됐다.

티베트는 청나라가 무너지자 1913년 독립을 선언했고, 1914년 인도 심라회의에서 영국으로부터 독립 승인을 얻어냈다. 당시 영국과 티베트가 심라조약에 명시한 ‘맥마흔 라인’이 현재 인도와 중국 간 영토 분쟁의 불씨가 됐다.

티베트는 1950년 중국군의 침공에 굴복해 중국 영토로 편입됐다. 1959년 티베트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났으나 실패한 뒤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인도 식민지배 시절 영국은 티베트를 중국과의 완충지대로 삼으려 했다. 우려대로 티베트가 중국에 넘어가자 인도와 중국이 직접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인도 북동부 아루나찰프라데시주의 9만㎢ 영유권을 주장하고, 인도는 카슈미르 악사이친의 3만8000㎢를 중국이 불법 점령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달 필리핀 마닐라시내의 중국영사관 근처에서 필리핀 시위대가 중국의 남중국해 점거를 규탄하며 중국 국기를 불태우는 장면이다. AP연합뉴스

러시아와도 영토 앙금, 불씨 여전

중국은 러시아와도 한때 철천지원수 같은 사이였다. 중국은 청나라 말기 동북지역의 방대한 땅을 러시아에 내줬다.

러시아는 17세기 초부터 시베리아 동쪽으로 진출해 청나라와 수차례 충돌하다 1689년 국경선을 정하는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었다. 중국의 첫 국제 조약이다. 이어 1858년에는 아이훈 조약으로 아무르강(헤이룽강)과 스타노보이산맥 사이의 60만㎢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챙겼다.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우수리강 동쪽 연해주와 사할린섬 등 40만㎢를 추가로 얻었다. 그후 중국은 동해로 가는 길이 막혔다.

중국과 러시아는 1969년 3월 우수리강 중류의 전바오(珍寶·다만스키) 섬에서 대규모 군사 충돌을 벌였다. 양측은 탱크와 장갑차, 다연장로켓포까지 동원해 전면전을 벌였다. 중국은 연신 참패를 거듭했다. 이후 4380㎢에 이르는 국경에 중국과 소련이 각각 81만명과 65만명의 병력을 배치하며 대치를 이어갔다. 소련은 핵무기 사용까지 검토하기도 했다.

‘전바오 전투’는 중국과 러시아의 깊은 영토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두 나라는 세력 균형이 무너지면 언제든 영토 전쟁이 불거질 수 있다.

일본의 센카쿠열도, 중국의 태평양 관문

중·일 영유권 분쟁 지역인 센카쿠열도에 나타난 중국 해경선 모습. AP연합뉴스

중국은 일본과도 동중국해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 서남쪽 약 410㎞, 중국 대륙 동쪽 약 330㎞, 대만 북동쪽 약 170㎞에 위치한 8개 무인도는 일본이 실효지배를 하고 있다. 중국은 센카쿠열도에 대해 명나라 때 자국 바다를 방어하고 관리하는 구역이었으나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강제로 귀속시켰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일본이 센카쿠열도를 국유화하자 희토류 수출 금지 등 경제 보복을 했다.

중국은 주기적으로 국제사회에 이 지역이 영유권 분쟁지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만약 일본이 허점을 보이면 센카쿠열도는 중국이 가장 먼저 편입을 노리는 지역이 될 수 있다. 중국이 센카쿠열도를 손에 넣는다면 태평양으로 가는 대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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