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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알뜻 말뜻] 프리미엄을 초월하라


기원전 770년 이후 중국 대륙에서는 주나라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틈을 타 주변 제후국들의 패권전쟁이 550년이나 이어졌다.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대한민국에서는 건설사들의 패권전쟁이 가열돼 이후 10년간 치열하게 우열을 가렸다. 춘추전국시대라 불리는 앞의 시대는 진시황의 천하통일로 새 시대를 맞았고, 아파트 브랜드 경쟁시대라 불리는 뒤의 시대는 라운드를 거듭하고 있다. 제자백가(諸子百家)가 등장했던 춘추전국시대와 마찬가지로 아파트 브랜드 경쟁시대에는 말 그대로 수많은 ‘가(家)’들이 생겨나 난립했다.

건설사마다 아파트 이름을 짓고 새로운 브랜드를 대표할 모델을 찾느라 한동안 전쟁을 벌였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가 단기간에 재산 증식을 할 수 있는 투자상품이 된 배경은 결코 단순하지 않지만, 2000년대 1·2차에 걸친 이 치열한 브랜드 전쟁의 배경은 단순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전국에 투기 열풍이 불고 있었다. 역세권이나 공원 옆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에는 청약통장을 들고 온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들 중 많은 수는 그곳에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되팔기 위해서 온 이들이었고, 그런 이들 덕분에 분양은 종종 대박을 쳤다.

시세 차익이라는 말은 프리미엄이라는 말로 대체돼 노래 후렴구처럼 전국에서 합창됐다. 어쩌면 우리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어 단어는 ‘러브’가 아니라 ‘프리미엄’일 거다. 다 지어지지도 않은 아파트 가격이 수천만원씩 오르고 몇 년이 지나면 프리미엄만 억대를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건설사들은 순순히 계약금과 중도금을 내고 아파트가 준공되기를 기다려줄 고객들을 위해 15초나 30초의 판타지 그림을 만들어댔다. 모델은 제각각 달랐으나 광고가 만들어낸 판타지 그림은 거의 유사해서 10여년간 아파트 광고의 크리에이티브 콘셉트는 모두 ‘유럽풍’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2009년에야 다른 광고가 나왔다. 그간의 광고를 반성하듯 더 이상 드레스 입은 톱모델과 와인잔이 등장하지 않았다. 아파트 광고 트렌드가 바뀐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며 부동산 경기가 전과 다르게 급격하게 침체됐기 때문이다. 아파트 매수 심리가 위축되고 미분양이 속출했다. 건설사들은 더 이상 높은 모델료를 지급하려고 하지 않았고, 소비자들도 눈에 보이는 실속을 챙기려는 마음이 강해졌다.

2020년, 다시 천정부지로 솟구친 아파트값과 부동산 시장을 잡으려는 정부 대책과 시장 반응이 뜨겁다. 프리미엄을 넘어선 초(超)프리미엄 아파트의 시대. 몇 년 전 전자제품 광고에서 ‘초프리미엄’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나는 담당 카피라이터의 고심을 느낄 수 있었다. 프리미엄이라는 말은 너무너무 흔해 뭔가 더 우월하고 값비싸다는 말을 하고 싶고, ‘울트라 프리미엄’이라고 하려니 왠지 좀 경박해 보이는 것 같아, 영어 명사에 한자 접두사를 붙여야 했을 그. 이런 기이한 조어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극단적 프리미엄의 세계에서 한없이 초조해지는 자들은 무주택자일까 다주택자일까?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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