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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지자체장 집무실의 ‘밀실’

배병우 논설위원


공공기관장이 연루된 성추행 사건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꼽는 피해 장소가 해당 기관장의 집무실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B씨,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김지은씨도 집무실에서 벌어진 성폭력을 고발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전 비서 A씨는 여기에 더해 집무실 내 침실을 지목했다. A씨 측은 “업무시간 중에 박 전 시장이 집무실 안에 있는 침실로 피해자를 불러서 안아 달라며 신체 접촉을 했다”고 했다.

서울시장 집무실 자체가 비서실을 거쳐서 들어가야 하는 등 외부와 격리된 장소다. 여기에 더해 이불과 침대를 들여놓은 침실이 왜 필요한지 의아해하는 시각이 많다. 공식적으로는 격무에 시달리는 기관장이 쉬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상당수 다른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의 집무실에도 내실이나 별실로 불리는 이런 공간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별 쓰임새도 없는,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일 뿐이다. 한 광역단체에 파견된 중앙부처 공무원은 “광역단체장의 일정은 매우 빽빽한데 언제 그런 공간을 사용하는지 의문이다. 내실이 없어도 집무실 자체가 넓어서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공무원은 “아무리 선출직이지만 지자체장도 공무원인데, 집무실에 그런 내밀한 공간을 마련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권위주의 시대의 관행을 편의적으로 답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실 옆에 샤워실을 설치한 데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선출직이라면 직원 휴게시설 등에서 일반 직원이나 시민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겉으로는 ‘주민 눈높이’를 강조하지만, 본질은 권위주의다. 가장 투명하고 공정해야 할 공공기관에 기관장 개인을 위한 폐쇄된 밀실이 있다는 게 이율 배반이다. 공간이 사람의 심리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박 전 시장도 애초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폐쇄적이고 내밀한 공간이 있다 보니 성추행을 더 쉽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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