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에 창조자 지위를 부여할 수 있나

[책과 길] 창조력 코드 /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박유진 옮김 / 북라이프, 464쪽, 2만원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 작곡한 곡을 로봇이 연주하는 순간이 올 수 있을까. 나아가 그것을 듣는 인간들은 그것을 예술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창조력 코드’의 저자 마커스 드 사토이는 창조력의 본질, 인공지능이 달성한 창조력의 현주소를 탐색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수학자인 저자가 “실존적 위기를 겪게 된 계기”라고 밝힌 장면은 우리에게도 더 없이 친숙하다.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이세돌과 ‘알파고’의 다섯 차례 바둑 대국이 그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바둑은 컴퓨터가 수학의 영역에 침범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보호막”이었다. 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가 체스 그랜드마스터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었지만 체스와 바둑은 경우의 수 120자리와 300자리에서 보듯 차원이 다르다는 게 저자의 믿음이었다.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자신의 믿음을 무너뜨린 인공지능(AI) 혁명 과정을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구글 검색 및 넷플릭스 추천 알고리즘 등을 예로 들어 “학습하고 적응하며 진화할 수 있는 코드”의 작동 원리와 발전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기계학습을 가능케 한 배경에는 ‘데이터 홍수’가 있다고 강조한다. 알파고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알파고를 상대로 100전 100승을 거둔 ‘알파제로’가 등장했듯 광대한 데이터라는 숫돌에 자신을 벼린 AI의 진화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여기까지 보면 이 책은 2016년 ‘세기의 대결’로 환기된 AI의 눈부신 진화를 한 번 더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책의 뼈대가 되는 ‘AI는 창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증명하기 위한 여정의 일부에 불과하다. 옥스포드대 수학과 교수이자 영국 왕립학회 회원인 저자 마커스 드 사토이는 회화, 음악, 문학에 자신의 전공 분야인 수학을 넘나들며 AI에 창조자의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지 탐색한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면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진 창조의 철옹성에 다가선 다양한 AI 작품을 접할 수 있다. 먼저 마이크로소프트와 네덜란드 델프트공과대 데이터 과학자들은 2016년 4월 5일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의 작품을 공개했다. 렘브란트가 남긴 346개의 작품을 살핀 후 150기가바이트에 달하는 디지털 그래픽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물이다. 3D 프린터를 이용해 렘브란트 후기 작품의 주요 특징인 물감을 덧바른 방식도 구현했다. 공개 이후 트위터에선 1000만 번 넘게 언급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음악에선 AI 작곡가 ‘에미(Emmy)’가 바흐 스타일로 만든 곡을 실은 ‘계획적으로 만든 바흐’ 앨범을 낸 것이 94년일 정도로 역사가 비교적 깊다. 이후 재즈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를 참조해 재즈 즉흥 연주를 해내는 ‘컨티뉴에이터(Continuator)’를 넘어 청자에 따라 맞춤형 음악을 작곡 및 편곡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기계학습을 문학 창작에 적용하는 ‘보트닉(Botnik)’이 ‘해리포터’를 활용해 만든 작품 역시 미흡한 점이 있지만 그럴듯하다.


특히 저자가 직접 지켜 본 로봇의 언어 창조 과정은 적잖은 놀라움을 준다. 컴퓨터 공학자 뤽 스테일스의 연구실을 방문한 저자는 로봇들이 특정 자세에 어울리는 단어를 생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로 소통하며 오류를 교정하는 과정을 보게 된다. 그 결과 일주일 후에는 로봇들이 연구자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소통하기에 이르렀다.

AI가 만든 작품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예를 들어 렘브란트 프로젝트의 작품을 본 영국 미술 평론가 조너선 존스는 “인간의 창조적 본성이 반영된 온갖 작품을 희화화한 참으로 끔찍하고 무미건조하고 투박하며 비천한 졸작이다”라고 혹평한다. 반면 컨티뉴에이터를 테스트한 재즈 피아니스트 베르나르 뤼바는 “제가 내놓을 수도 있었던 아이디어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제가 실제로 그런 아이디어를 내놓으려고 했더라면 몇 년이 걸렸을 거예요”라며 놀라워한다. 모순된 반응도 있다. 에미가 작곡한 곡에 대해 한 음대교수는 “그렇게 아름다운 곡을 들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고 했다가 몇 주 후 같은 곡에 대해 “감정도 알맹이도 혼도 전혀 담겨 있지 않아요”라고 혹평한다. 찬사와 혹평 사이에는 “그 곡을 컴퓨터 코드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됐다는 점”만 놓여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저자는 예시된 작품들을 통해 AI가 일정 정도의 창조력을 얻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결국 그 창조력 역시 인간의 코드를 원동력으로 하고 있는 점, AI가 아직까지 자아와 의식을 얻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을 창조력의 한계로 꼽고 있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갖춘 기계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은 아니다. 오히려 의식 있는 기계가 등장했을 때 서로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미술, 곡, 문학, 수학 같은 창조물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책에선 저자의 수학지식이 AI 알고리즘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수학의 창조적 측면을 강조하는 저자의 설명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수학에서 AI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중반부 챕터들은 예술에 대한 흐름과 다소 동떨어진 느낌도 줘 더디게 읽힐 수도 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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