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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가상 무용수… AI 통한 안무… 테크, 예술 속으로 녹아들다

[아트 & 테크] <2> 무용

무용, 연극, 노래, 미술의 경계를 허문 탄츠테이터로 공연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20세기 현대무용의 혁명가’ 피나 바우쉬가 지난 2009년 6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독일 출신의 안무가 바우쉬는 무용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남겼고, 바우쉬가 이끌던 부퍼탈 탄츠 테아터는 그의 타계 이후 원로단원들을 중심으로 기존 레퍼토리들을 공연해 왔다. 하지만 나이가 든 원로단원들이 퇴단할 경우, 바우쉬의 작품들은 예전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지 무용계의 우려가 크다. 무용은 아무리 이론을 잘 정리하고 영상을 잘 남긴다 해도, 그 역사적인 순간과 고유의 움직임들을 배우지 않고서야 똑같이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무용을 단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일반인도 기술을 통해 그 움직임을 그대로 표현하도록 만드는 실험이 등장했다. 싱가포르의 안무가 초이 카 파이는 2011년 작품 ‘댄스픽션(Dance Fiction)’을 통해 바우쉬 등 무용사의 거장들 특유의 움직임을 근육센서 기술로 사람의 몸에 재현해보기로 한 것이다.

싱가포르의 안무가 초이 카 파이가 근육센서 기술을 통해 거장 안무가들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영상 속 피나 바우쉬(아래 사진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아크람 칸, 자비에르 르 로이, 오하드 나하린의 움직임이 근육센서를 단 무용수들에 의해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Choy Ka Fai 제공

무용수의 몸에 센서를 붙이면 영상기록 속 거장들의 움직임이 센서를 통해 근육에 전달된다. 이 센서는 미세한 진동으로 근육을 자극하여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데 처음에는 간지러운 듯하지만, 몸을 기계에 맡기고 진동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기계가 주는 신호를 따라 움직일 수 있다. 파이의 작품을 보면 센서를 단 무용수가 1980년대 영상 속 무용수의 움직임을 무대에서 그대로 전달한다. 두 무용수를 비교해 보면 누가 누구를 따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올해 코로나19의 여파로 극장들은 문을 닫으면서 공연은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공연을 할 수 없게 됐다. 극장의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며 공연예술 분야에서는 미래에 대한 장기적 전략으로서 예술과 기술의 융합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파이의 2011년 실험은 비대면이 심화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절한 대응사례가 될 수도 있다.

영국의 거장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안무한 ‘아토모스’의 한 장면. Wayne McGregor Studio·LG아트센터 제공

네덜란드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대 위에서도 적용돼 무용수들끼리도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매우 디스토피아적이지만, 무용수와 무용수의 넓은 거리에 가상의 무용수가 등장한다면 어떨까. 2017년 LG아트센터를 방문한 영국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의 ‘아토모스(Atomos)’에서는 무용수들의 몸에 센서를 부착해 움직임을 추출한 뒤 3D 비디오로 변환된 가상의 무용수가 무대에 더해진 공연이었다. 이후 맥그리거는 더욱 심화된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구글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자신의 과거 작품 영상자료들을 구글 인공지능에게 분석하고 움직임을 데이터화 하도록 함으로써 그의 다음 안무를 예상하도록 했다. 직접 안무를 하는 대신, 인공지능(AI)이 알려주는 무용 동작들을 오히려 안무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맥그리거(사진 오른쪽)가 구글 엔지니어와 함께 AI가 만들어낸 안무를 보고 있다. Wayne McGregor Studio·LG아트센터 제공

여기서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대로 안무를 만들어내는 것일 뿐인데, 맥그리거가 작품의 안무가라고 할 수 있을까. 놀라운 것은 인공지능을 통한 맥그리거의 안무는 그의 과거 움직임들을 바탕으로 재생산하고 있기에 그만의 고유한 동작이나 습관은 남기되,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동작을 창작함으로써 오히려 더욱 개성 있고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지난 6월 26~27일 온라인으로 공개된 국립현대무용단의 신창호 안무 ‘비욘드 블랙’ 역시 인공지능으로 분석된 무용수의 움직임을 안무에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인공지능이 안무를 예상하려면 ‘좋은 움직임’과 ‘영상’이라는 데이터가 있어야만 더 창의적이고 그럴듯하게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즉, 안무자의 뇌가 증폭된 셈이다.

그런데, 기술이 더해진 공연을 보고 있으면 눈앞의 장면이 기술을 통해 자동으로 실현되는지, 아니며 사람이 수동으로 조정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관객이 직접 기술을 경험할 수 있는 ‘이머시브(immersive) 공연’ 형태로 선보이는 무용 작품도 나왔다. 증강현실 게임을 하듯이 관객이 작품 속에 직접 참여하고 관객의 선택과 행동이 작품을 완성하기도 하는 참여형 공연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스위스 안무가 질 조뱅의 2017년 이머시브 증강현실작품 ‘VR_I’가 있다.

‘VR_I’에서 관객들은 증강현실 고글, 백팩 컴퓨터, 손과 발에 착용한 센서를 통해 증강현실 게임 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춤추는 거인들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이 함께 사막이나 도시 등 가상의 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 20분 동안 5명만 참가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관객들이 최대한 몰입할 수 있는 가상현실 환경을 구축했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 속 자신의 실제 모습이 보이지 않고 오직 가상현실의 세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거울 기능을 없앴는데, 자신의 손이나 신체를 내려다봄으로써 관객 스스로가 어떤 가상의 인물로 변신했는지 느끼도록 했다. 또 마치 ‘잭과 콩나무’에서 잭이 거인의 세계에 들어간 것처럼 참가자들이 고개를 들면 거인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장소를 이동하면 다른 누군가를 만나 함께 춤을 출 수도 있다. 무용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증강현실 속 참가자의 움직임은 작품이 된다. 온 신체의 감각으로 체험을 하고 나면, 증강현실 속 이상하고도 두둥실한 움직임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밖에 없다.

질 조뱅의 작품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비싸고 좋은 기술을 사용해서가 아니다. 그는 기술의 스토리텔링을 중시했다. 예술에서는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그 기술이 사용되었고, 어떤 효과와 감정을 일으키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단순하게 잘 만들어진 기술 앞에서 예술가가 멋진 동작을 선보이는 1+1=2가 되는 장르의 결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앞으로는 예술과 기술이 적절히 조화되어 한 작품이 되는 1x1=1의 사례들이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기술 전문가들이 예술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가져야 하고 예술가들도 기술 전문가들과 협업 할 다양한 기회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의 경우 2018년부터 벨기에, 영국, 프랑스 3개 도시에서 3일간 무용과 디지털기술의 해커톤인 ‘댄사톤(Dansathon)’이라는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댄사톤은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의 프로그래머나 관련된 그래픽 디자이너, 프로젝트 매니저 등이 정해진 시간 내에 집중적으로 작업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이벤트인 ‘해커톤’의 개념에 안무가들의 참가로 무용과 기술이 융합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대회이다. 예술가와 매개자, 기술 전문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코치하고, 멘토하며, 팀을 이뤄어 프로젝트를 만든 뒤 마지막에 각 도시별로 최고 프로젝트를 선발해 팀당 만유로의 개발지원금을 전달한다.

물론 상금을 받는다면 좋겠지만 댄사톤의 주요 초점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온 이들이 단기간에 협업하려면 어떻게 소통을 하고,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댄사톤은 바로 기술과 예술의 다양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참가자들에게 성장할 수 있는 과정을 제공한다. 국내에서도 이름은 다르지만 최근 다양한 공공 지원사업을 통해 기술과 예술을 접목하고 실험하는 다양한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기술을 융합한 무용이 어떤 이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다른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로 공연은 멈춰야 했지만, 예술인들은 전보다 더 많은 소통과 움직임을 보인다. 오히려 극장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다양한 가능성을 탐험하기 위해 타 장르와의 교류, 자연과의 연결, 그리고 기술과의 관계성을 실험 중이다. 앞으로 예술 분야의 화두는 누가 먼저 대단한 기술을 선보이는지보다 얼마나 동시대를 잘 반영하고 기술이 자연스럽게 예술에 접목되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장수혜 무용 프로듀서는
장수혜는 미국 시애틀무용축제, 서울세계무용축제 등에서 국제교류 담당 프로듀서로 활약했으며 문화예술교육단체 ‘책누나프로젝트’의 대표이기도 하다. 현재 국내외 문화예술기관과 공연예술단체의 국제교류와 기획 및 관련 연구를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장수혜 무용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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